◇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니콜라스 터프스트라 지음/임병철 옮김/436쪽·2만 원·글항아리
누에를 기르고 고치를 풀고 있는 피렌체 소녀들. 벨기에 판화가 얀 판 데르 스트라트의 작품. 글항아리 제공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에선 극심한 기아와 열병이 유행하면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모를 잃거나 가정에서 버림받은 수백 명의 소녀가 거리를 누볐다. 이에 1554년 12월 크리스마스 무렵 ‘소녀 전용 보호시설’인 ‘피에타의 집’이 문을 연다. 헌신적인 피렌체인들은 운영기금 마련과 시설 운영을 위해 봉사에 나선다.
여기까지가 훈훈한 르네상스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은 미담을 급작스레 ‘미스터리 스릴러’로 반전시킨다. 마르게리타는 ‘피에타의 집’ 입소 한 달 후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뿐만 아니다. 10여 년간 ‘피에타의 집’에 수용됐던 소녀 526명 중 202명만이 살아남는다. 3명 중 2명이 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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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충격적인 사실은 매춘 등 성문화가 융성했던 당시 피렌체의 검은 속살에서 나온다. 피렌체 성인 남성은 소녀와의 성관계를 선호했다. 성병에 감염된 바람둥이들은 소녀의 순수한 처녀성이 유독성 물질을 흡수해 건강을 되찾게 해준다고 믿었다. 피에타 소속 소녀들은 일명 ‘처녀 치료’의 피해자가 됐다. 피에타 소녀 줄리아는 메디치 가문의 맏딸 엘레오노라의 결혼 상대인 만토바(도시 이름)의 태자 빈첸초 곤차가에게 겁탈당하기도 한다. 메디치가에서 곤차가의 생식 능력을 검증한다며 실험을 했을 정도로 소녀들의 인권은 유린됐다.
나아가 ‘피에타의 집’은 보호시설에서 점차 폐쇄적인 수녀원으로 변한다. 개방적 보육원이 아닌 강요적 훈육이 난무하는 밀폐적 공간이 되면서 소녀들의 피해는 더욱 깊숙이 숨겨지게 된다. 꽃 같은 소녀들이 아내로, 엄마로 누리게 될 삶을 잃었는데도 역사에서 그녀들은 사라졌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인본주의와 문화 황금기를 누린 르네상스에 대한 찬사 속 감춰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학대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