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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한국 게임산업, 美 아타리 쇼크서 배워라

입력 | 2015-03-30 03:00:00


주성원 산업부 차장

게임산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1983년 북미 비디오 게임산업 붕괴’, 이른바 ‘아타리 쇼크’다. 1982년 당시 320억 달러 규모이던 미국 비디오 게임산업 규모가 1983년부터 1985년에 걸쳐 1억 달러까지 폭락한 사태다.

아타리(Atari)는 1970년대 초반 가정용 게임기(콘솔)를 개발한 회사다. 1977년 선보인 게임 콘솔 ‘아타리 2600’은 청소년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열광하는 홈 비디오 게임 붐을 이끌었다. 팩만 바꿔 끼우면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기였다.

게임 열풍에 승승장구하던 미국의 게임업체들은 곧 “무엇을 만들어도 팔린다”는 자만감에 사로잡혔다. 질 낮은 게임이 양산됐고 품질 경쟁은 뒷전이었다. 경영진은 충분한 연구 기간을 주지 않은 채 개발자를 압박해 설익은 제품 출시를 밀어붙였다.

게임 유저의 실망이 무르익을 즈음인 1982년 연말, 아타리가 내놓은 게임 ET는 게임산업 몰락의 단초가 됐다. 영화의 감동을 기대했던 소비자들은 조악한 게임 수준에 등을 돌렸고 수요 예측도 틀려 엄청난 재고가 쌓였다. 사람들은 더이상 비디오 게임을 하지 않게 됐다. 게임업체들은 줄도산했다. 1985년 닌텐도가 등장하기까지 게임시장은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었다.

굳이 30여 년 전 일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아타리 쇼크가 게임산업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 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영화나 대중음악 같은 콘텐츠 산업이다. 소비자들은 언제든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날 준비가 돼 있다. 이런 속성은 콘솔 게임이든, 모바일이나 온라인 PC게임이든 관계없이 적용된다.

한국 게임산업은 요즘 안팎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안으로는 청소년 보호 명목의 ‘셧다운제’나 복권처럼 사행성 시비가 있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 각종 규제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밖으로는 막대한 자본력과 값싼 노동력, 자국의 거대 시장을 무기로 하는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부담스럽다. 정책적 지원을 등에 업은 핀란드의 모바일 게임들이나 전통적으로 시장을 장악해온 미국의 거대 온라인 게임보다 경쟁력에서 나을 것도 없다.

게임 규제는 게임을 오락이나 산업이 아닌 ‘중독의 원인’으로 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서 비롯됐다. 이런 시선을 바꾸고 게임을 문화로 정착시키는 일은 게임을 생업으로 삼는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 미국, 일본, 북유럽의 게임업체들과 경쟁할 ‘신무기’를 만들어낼 숙제도 그들 몫이다.

요즘 상황만 보면 이 숙제가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각종 규제 정책에 대해 게임회사들은 “업계 스스로에게 맡겨 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정작 지금까지 실현된 ‘자율 규제’는 많지 않다. 게임회사 경영진 사이에서 “이전만큼 좋은 인재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아타리 쇼크는 미국 게임업체들의 판단 착오가 가져온 ‘미국의 비극’이지만 한국 게임업계가 현실의 도전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판 아타리 쇼크’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타리 쇼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는 소비자들이 게임 자체를 외면했지만 지금은 다른 게임을 찾아 옮겨갈 것이라는 점 정도다.

지난해 시장 규모 10조 원을 넘긴 한국 게임산업은 태동기를 거쳐 성숙기에 들어섰다. 주변의 지원과 도움을 바라기에 앞서 게임업계 스스로 재도약을 위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혜안과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주성원 산업부 차장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