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이모 씨는 고교동창으로부터 “미국 달러에 투자해 수익률 200%의 대박을 터뜨렸다”며 함께 투자하자는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개인이 장외에서 외화를 직접 거래해 환율변동에 따른 차익을 올리는 ‘외환차익거래(FX마진거래)’라는 투자였다.
동창은 서울 송파구의 ‘선물 아카데미’에서 거래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투자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찾아간 사무실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이 씨는 업체에 300만 원을 내고 3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거래계좌를 트는 데 증거금으로 2000달러(약 220만 원)도 냈다. 그는 “증권사에서는 증거금으로 최소 1만 달러를 내야하는데 여기선 훨씬 적어 쉽게 투자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3000만 원으로 거래를 시작한 그는 결국 돈을 다 날렸다. 업체 측은 그에게 “다른 투자자를 더 데려오면 돈도 찾고 자동차도 받을 수 있다”고 꾀었다.
이 업체는 불법 FX마진업체로, 현재 피해자가 1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에 이어 2012년 정부가 FX마진거래 증거금을 대폭 인상한 뒤 증권·선물업계는 사실상 FX마진거래영업을 포기했다. 하지만 불법업체는 오히려 늘어 이런 다단계 업체로까지 진화했다.
이는 최근 3년 새 거래량이 80% 이상 쪼그라든 한국 파생상품 시장의 어두운 그림자다. ‘개미들의 증시 막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분별했던 개인들의 투기 행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규제를 강화했지만 오히려 음성적인 지하시장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물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김모 씨는 최근 증권사 대신 인천에 있는 ‘미니 선물업체’를 찾았다. 식당 간판을 내건 사무실에는 업체가 자체 개발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깔린 수십 대의 PC가 놓여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개인이 신규로 단순 선물거래만 해도 3000만 원 이상의 예탁금을 내고 사전교육 30시간, 모의거래 50시간을 받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HTS 이용료 100만 원을 내면 거래가 가능했다. 대신 매일 거래를 청산해 수익금의 10~30%를 낸다. 이곳은 인가를 받지 않은 불법업체로 거래한 개인도 처벌받을 수 있다. 이 업체가 운영하는 사무실은 3, 4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 한국거래소는 2013년 인터넷상에서 선물계좌 대여업체, 미니 선물업체, 불법 FX마진업체 등 사이버 불법금융업체 1300여 곳을 적발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적발이 쉬운 인터넷카페 등 온라인 대신 오프라인으로만 회원을 모집하는 업체가 급증해 불법업체를 찾아내기가 어려워졌다.
○국내 대신 해외로 가는 투자자도 늘어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파생상품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2011년 1584만 건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때까지 3년 연속 국내 파생상품 거래량은 세계 주요 거래소 중 1위였다.
하지만 2012년 하루 평균 거래량은 740만 건으로 반 토막 났고 올해는 24일 현재 283만 건으로 2011년보다 82% 이상 급감했다. 지난해 세계 순위도 11위로 추락했다.
특히 시장 진입이 어려워진 개인이 급속도로 줄었다. 파생상품 거래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25.6%에서 지난해 18.2%로 감소했다. 반면 외국인은 같은 기간 25.6%에서 38.7%로 늘었다. 파생상품 중 거래가 가장 많은 코스피200옵션은 외국인 비중이 55%나 된다. 김 실장은 “현물 주식시장의 등락에 대비한 헤지나 차익거래 목적으로 이용되는 게 파생상품 시장인데 특정 주체의 비중이 높으면 현물, 파생상품 시장 움직임이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이는 불필요한 해외 자본유출을 늘리고 국내 시장을 더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