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글로벌기획]“한국 기술자 年 1만5000명씩 美취업 초청합니다”

입력 | 2015-03-21 03:00:00

美하원서 발의한 ‘한국 전문직 비자’ 법안의 운명은?




제리 코널리 미국 연방 하원의원(민주·왼쪽에서 네 번째)이 올해 1월 의사당을 찾아온 한인 유권자들을 만나 한국 전문직 비자 법안의 발의와 처리에 힘쓰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는 법안의 공동 발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달 20일 미국 연방 하원에서 발의된 ‘한국과의 동반자 법안(Partner with Korea Act·HR1019)’이라고 합니다. 미국 국무부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전문직 인력에게 현재의 취업 비자(H-1B)와 유사한 ‘E-4’ 비자를 연간 1만5000개나 내준다고 적혀 있어요. 변호사나 의사 등과 달리 미국에서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 없는 엔지니어와 정보기술(IT) 프로그래머 등 주로 이공계 기술직에 종사하는 한국인이 1년에 1만5000명까지 미국에 들어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아예 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은 현재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전문직 인력의 신청을 받아서 추첨으로 8만5000개의 H-1B 취업 비자를 내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가운데 약 3000개를 따오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4년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캐나다와 멕시코는 연간 무제한으로 전문직 비자를 받고 있습니다. 2003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싱가포르와 칠레는 8만5000개 가운데 각각 5400개와 1400개를 우선 배정받습니다. 호주는 2005년 이후 H-1B 비자와는 별도로 E-3라는 비자를 연간 1만500개씩 받고 있습니다.

2012년 3월 한미 FTA가 발효된 한국에도 호주와 비슷한 특혜를 주자는 취지로 저를 발의해 주셨습니다. 발의에 나선 분은 미국 연방 의회 내 한국 관련 모임인 ‘코리아코커스’ 공동의장인 피터 로스컴 하원의원(공화·일리노이)입니다. 저를 탄생시키자는 법안에 공동으로 서명하신 분은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트렌트 프랭크스(공화·애리조나),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그레이스 멍(뉴욕) 하원의원 등 평소 한국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여야 중진 의원 19명입니다. 저의 탄생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4일 미국 워싱턴 의사당에서 존 베이너 연방 하원의장(공화·오른쪽)을 만난 정의화 국회의장이 전문직 비자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나빠져서 미국인들에게도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한국인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법안을 발의하게 됐을까요? 미국인들이 한국인에게 인심 쓰는 게 아니냐고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국 경제계와 교육계 등 전문직 관련 경영·인사 담당자들은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제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일자리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경제 회복에 꼭 필요한 전문직 인력들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더 많은 전문직 인력들이 와줘야 한다는군요. 믿기지 않으세요? 그럼 실제 목소리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요즘 미국에 있는 한국 외교관들은 저의 탄생을 위해 많은 애를 쓰시는데요, 그중 안호영 주미 대사님은 저 때문에 지난달 19일 텍사스 주 휴스턴에 가서 로버트 하비 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났습니다. 하비 회장은 “미국의 업계에서 고급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많으나 항상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 대사는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를 달성하고 미국의 우방인 국가 중에 고급 엔지니어를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되겠느냐. 한국인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에 대한 지원을 당부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에너지 산업의 중심인 휴스턴은 에너지와 석유화학뿐만이 아니라 보건의료, 항공우주 및 IT 분야에서도 한국과 협력할 여지가 많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셰일가스 등 미국 내 에너지 산업이 발전하면 미국은 한국에 에너지를 수출해서 좋고, 한국은 에너지원을 확보해서 좋습니다. 미국이 인프라를 확충하면 한국은 개발 장비 수출과 수송 선박 수요도 늘어나겠지요.

지난해 11월에는 당시 주미 대사관의 김기환 경제공사가 버지니아 주 혁신센터의 조지프 무디 회장을 예방하고 협조를 구했는데요, 역시 하비 회장과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유수 기업들이 우리 센터에 투자해 주기를 바란다. 미국 내 첨단 제조업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는 과정에 숙련도가 높은 근로자가 필요하다. 양국 간 협력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상호 지식재산권, 영업비밀의 보호 등이 존중되는 국가여야 하는데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나라는 한국을 빼면 그리 많지 않다.”

주미 대사관은 미국 내 9개 중견 기업과 3개 대학의 최고지도자 및 인력 채용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는데요, 역시 목소리는 한결같았다는군요.

가장 기대가 큰 곳은 현지 한국계 기업들입니다. 조지아 주의 기아자동차 현지법인 랜디 잭슨 인사·행정담당 수석부사장도 “한국계 직원들은 회사 성장의 핵심 역량”이라고 극찬했습니다.

한국과 무역을 하는 회사의 수요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본사가 있는 ‘브리징 컬처 월드와이드’라는 회사의 최고경영자인 돈 서더턴 씨는 “한국과 미국 사이의 무역 기회가 늘어나면서 미국의 고용주들이 현지에 있는 한국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 능력이 아시아 지역 확장에서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네바다 주에 있는 ‘키미 캔디’의 조지프 더트라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는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인들은 스스로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 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 사탕 제조 기술자 정우인 씨는 특수한 사탕 코팅법을 개발해 회사의 성공을 이끌었고 22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기업은 그렇다 치고 학교들이 저를 원하는 이유는 뭘까요. 학생들이 미국 대학에 유학을 와서 졸업을 한 뒤 저를 이용해 현지에서 일자리 잡기가 쉬워지면 당연히 유학을 오겠다는 학생들도 늘기 때문이랍니다.

서부의 명문 사립대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아이버 이매뉴얼 국제사무국장은 이렇게 설명하네요.

“우리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우선 학교의 평판에 끌렸다고 본다. 전문직 비자가 확대돼 (외국 학생들이 우리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에서 직장을 얻는다면 대학의 고등교육이 더욱 각광받을 것이다. 최근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졸업한 뒤 영원히, 아니면 잠깐 동안이라도 미국에서 일자리를 얻고 싶다고 답했다.”

지난해 가을 말 이 대학에는 한국 학생 764명이 공부하고 있었는데요, 전체 외국인 학생의 13.53%를 차지했습니다. 국가별로 치면 중국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다고 합니다. 중국의 인구를 감안하면 한국 학생들의 비율은 실로 엄청납니다.

역시 일리노이 주에 있는 명문 주립대인 어바나 섐페인 일리노이대의 마틴 맥팔레인 국제학생 및 교원지원국장도 “전문직 비자 확대는 미국 고등교육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계 학생들이 오고 싶은 미국 대학 25위에 드는 이 대학에는 지난해 말 현재 한국 학생 1269명, 한국 교원 172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요 실은 고백할 것이 있어요. 저는 재수 법안이랍니다. 제113대 의회 당시인 2013년 4월에도 로스컴 의원님 등이 저와 똑같은 법안(HR1812)을 발의했는데요, 이후 공화당 58명, 민주당 54명 등 총 112명의 지지를 받는 초당적인 법안이었지만 지난해 말까지 하원과 상원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됐답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상원에서도 조니 아이잭슨 의원(공화·조지아)이 유사한 법안(S2663)을 발의해서 민주 공화 양당에서 5명의 의원이 지지했지만 상원도 통과하지 못한 채 버려졌습니다.

그래서 새로 발의된 저는 내년까지 상하원을 통과해서 한미 양국에서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데 그게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어서 좀 걱정입니다.

법안 통과가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현재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이민개혁법안과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의원들은 전문직 비자가 별도의 법안이 아니라 통합 이민개혁법안 속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3년 상원을 통과한 통합 이민법안(S744)에는 전문직 비자 부분에 한국 쿼터 5000개가 포함됐었답니다. 하지만 이민개혁에 대한 공화 민주 양당의 견해차로 이 법안은 하원에서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하원은 별도의 통합 이민법안을 만드는 데도 실패했지요. 이번 114회 의회에서도 벌써부터 이민개혁을 놓고 백악관과 민주당, 다수당인 공화당이 강경 대치하고 있어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외국인 전문직 인력이 미국 경제 회생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와 정반대로 미국인 기술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뿐이라는 보수 여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17일 미국 상원 법사위에서는 이와 관련된 청문회가 열렸는데요, 미국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전문직 비자에 대한 비판론이 거세게 제기됐습니다. 특히 상원 공화당의 대표적 반(反)이민파인 제프 세션스 이민소위원회 위원장(앨라배마)은 “H-1B 비자가 남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전문직 비자 제도 자체의 축소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전문직 비자 제도를 악용하는 악덕 기업주들도 이런 여론을 더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캘리포니아 주의 한 전력공급회사는 경영난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임금이 높은 미국인 시민권자들을 대거 해직시키고 대신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해외 전문직 인력을 채용해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미국 전체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답니다. 서던캘리포니아 에디슨이라는 이 회사는 지난해 8월부터 IT 분야에서 일해 온 미국인 직원 400여 명을 올해 3월 말까지 정리해고하고 대신 인도에서 온 H-1B 비자 소지자를 고용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남아 있습니다.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해 4일 오전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만난 정의화 국회의장은 많은 의제 중에 특히 저를 언급하면서 하원을 꼭 통과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일부 미국 의원들도 “우리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한국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도 저를 응원해 주실 거죠? 파이팅.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