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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지음
302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
대학교 미화원으로 일하던 남자는 어느 날 건물 벽을 휘감은 녹색 덩굴식물로 발견된다. 미화원들이 학교로부터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고 점거 농성에 들어간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남자의 팔다리는 녹색 줄기로 변형돼 건물을 휘감았고 녹색으로 변한 얼굴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의 딸은 패션몰 고객상담실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다. 딸도 다른 계약직 동료들과 회사에서 해고된 날 매장 한가운데 기둥을 휘감은 덩굴식물로 발견된다.
이렇게 도시에는 절규하듯 기괴한 소리를 내는 인면수(人面樹)가 하나둘 늘더니 덩굴 숲을 이룬다. 도시의 기후는 건조한 편이라 사람들은 그저 인면수가 말라죽길 기다리며 물도 주지 않는다. 한 때 사람이었을 인면수가 말라죽고 나면 수레에 담아 버리거나 불쏘시개로 쓴다. 그들이 건네고 싶어 하는 말은 기껏해야 한 장짜리 고막의 떨림이 아닌 온몸을 써서만 들을 수 있는 그 무엇 같다. 그래서 도시는 아예 듣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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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지은 소설집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그것’에 무엇을 놓을지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불행한 일이 나만은 아니길 바라는 괴물이 되거나, 나만은 괴물이 안 되길 바라거나.
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