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일본에 살면서 “당신 이제 일본사람 다 됐네”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이 언제일까. ‘전화기를 든 채로 (얼굴도 보이지 않는 통화 상대를 향해) 열심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기 시작할 때’라는 농담이 있다. 한국은 어떨까. 방바닥에 가부좌(책상다리) 자세로 앉는 것이 의자에 앉는 것보다 더 편하게 느껴지거나 넙죽 엎드려 절하는 게 익숙해질 때쯤일까.
시사주간지 타임의 중국 베이징 주재 특파원인 마이클 슈먼 씨(47)의 신간 ‘공자, 그리고 그가 창조한 세계’는 동아시아인들의 이런 일상에서 공자(孔子·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를 탐구한 책이다. 공자의 사상과 철학에 영향을 받은 아시아 지역, 그중 13억 인구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전 영역에서 공자가 어떻게 살아 숨쉬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존 허츠먼 전 주중 미국 대사는 “공자의 가르침이 여전히 중국 사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공자를 모르면 중국도 이해할 수 없다”고 이 책의 추천사에 썼다. 저자의 집필 동기 중 하나도 ‘서방세계, 특히 미국은 중국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이었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공자’ ‘선생님으로서의 공자’ ‘사업가로서의 공자’ ‘정치인으로서의 공자’ 등 총 10개의 범주를 나눠 ‘중국 속 공자’를 해부한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많은 아시아 기업들이 부양가족이 있는 직원을 해고하는 걸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로 여겼다. 회사를 ‘또 하나의 가족’으로 여기는 인식이 미국 등 서양 국가보다 매우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식 민주주의나 인권을 보편적 가치로 인정하지 않고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와 철학에 기반한 정치체제가 있다고 믿는 것도 공자의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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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의 한국 주재 특파원이기도 했던 슈먼 씨는 동아시아에서만 16년째 취재활동을 하고 있다. 부인은 한국계 미국인(유니스 윤·한국명 윤재원)으로 CNBC 방송의 베이징 특파원. 그래서 함께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다. 슈먼 씨는 ‘2500여 년 전 인물인 공자가 현재의 내 삶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처음 느낀 건 2009년 봄 결혼식 때’라고 썼다. 부인은 “전통 한복을 입고 양가 부모에게 큰 절을 올리는 폐백(幣帛)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 슈먼 씨는 질색했다. “나는 유대인이다. 유대인 문화에서는 땅에 머리를 박고 절하는 건 매우 치욕스런 행동으로 여긴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부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공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뉴욕=부형권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