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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부 죽였지” 부동산 재벌의 화장실 혼잣말이 방송되며…

입력 | 2015-03-16 16:48:00


“내가 무슨 짓을 했냐고? 물론 전부 죽였지.”

미국 부동산 재벌2세 로버트 더스트(71)는 2년 전 다큐멘터리 녹화 도중 잠시 화장실에 들른 사이 이렇게 읊조렸다. 당시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지만 그가 차고 있던 마이크로 녹음이 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그의 자백 음성은 15일 더스트의 생애를 다룬 케이블방송 HBO의 다큐멘터리 ‘징크스(불길한 징조·The Jinx)’시리즈를 통해 전파를 탔다. 방송사는 최근 다큐멘터리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 해당 파일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HBO의 제보로 방송 하루 전날인 14일 밤 뉴올리언스의 한 호텔에서 더스트를 살해혐의로 체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 “방송사 PD가 30년 넘게 경찰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재벌, 살인, 비밀, 방송을 통한 폭로라는 흥행요소를 모두 갖춘 사건에 누리꾼들이 폭발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더스트는 뉴욕 맨해튼 고층빌딩 수십 채를 보유한 부동산 재벌 세이모어 더스트의 아들이다. 자산 40억 달러(4조5000억 원)의 더스트가는 매년 포브스지가 발표하는 부호 명단에도 오른다. 그는 지난 30년 간 2건의 살인사건과 1건의 실종사건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그는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법망을 피해왔다. 부동산 재벌 가문의 비밀과 실종 사건을 담은 그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 ‘올 굿 에브리씽’으로 제작됐다.

더스트가 처음 의혹을 받은 것은 1982년. 당시 38세의 그는 기차역에 태워준 부인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며 경찰에 실종 신고를 냈다. 경찰은 실종된 부인이 평소 “내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모두 남편이 벌인 일”이라고 이야기했다는 주변 증언을 토대로 그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끝내 증거를 찾지 못했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00년 더스트의 대학동창이자 여자친구였던 수전 버먼이 실종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제보를 경찰에 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버먼은 자택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더스트를 의심했지만 역시 증거가 없었다.

더스트는 또 2004년 이웃 모리스 블랙을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 내 바다에 버린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증거는 충분했으나 유명 변호인단을 선임해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 한동안 벙어리 여성으로 변장한 채 시골에 숨어 지냈다.

HBO 방송팀은 지난 10년 간 더스트 다큐멘터리를 준비해왔다. 그를 둘러싼 살인사건과 실종을 밝히기 위해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부동산 재벌가 장남으로 지낸 유년시절, 연애와 결혼, 후계구도에서 동생에게 밀린 뒤 느낀 소외감 등을 취재하며 그의 실체에 다가갔다. 그의 변호인단은 “방송사측이 더스트를 잡기 위해 이번 시리즈를 기획하고 수사 당국과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미 법조인들 사이에선 더스트의 육성파일이 사적 공간에서 한 혼잣말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의견과 충분히 증거가 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편 그의 동생은 “이번 일로 형이 죗값을 치르게 돼 다행”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