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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난 사람]“한국문학을 알고 싶다면… 찰스에게 물어봐요”

입력 | 2015-02-14 03:00:00

‘한국현대문학’ 사이트 운영하는 찰스 몽고메리 교수




찰스 몽고메리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가 동국대 만해관 연구실에서 영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책들 앞에 앉아 있다. ‘한국 문학 전도사’로 활동하는 그의 연구실에는 영문으로 된 한국 소설 수백 권이 자리 잡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Say Charles, Where Should I Start in Korean Literature? What you should read really depends on what you like.(찰스에게 말하세요, 한국 문학을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나요? 당신이 무엇을 읽어야 할지는 당신이 뭘 좋아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아래에 이에 대한 더 상세한 내용과 함께 목록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가족에 대해 감상적인 사람이라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어야 해요. 그 다음으로 좋은 선택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입니다. 현대적이고 실존주의적인 소설을 좋아한다면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또는 ‘빛의 제국’을 읽으세요. 여성문학을 좋아한다면 ‘한국 여성작가 단편소설집’이나 최윤의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살펴보길 바랍니다. 개발의 비용에 대한 현대적인 탐험을 하고 싶다면 단편소설집 중에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어보십시오. 경제 개발에 의해 가족이 무너지는 강력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국 출신인 찰스 몽고메리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56)가 운영하는 ‘한국현대문학 웹사이트’(www.ktlit.com)에 올라와 있는 영문 게시물이다. 이 웹사이트에서 그는 영어를 쓰는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한국 문학을 알리고 있다. 한국 작가를 소개하고 한국 소설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평도 제공한다. 몽고메리 교수가 웹사이트를 개설한 2006년 1월만 해도 개인 블로그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매달 많게는 1만5000명이 방문해 정보를 얻는다.

개설 초기만 해도 웹사이트 접속자의 80%는 한국인으로 추정됐다. 지금은 약 23%는 한국에서, 77%는 그 외 지역에서 접속한다. 접속지는 미국 필리핀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등으로 다양하다. 방문자들은 “한국 소설을 소개해줘서 고맙다” “한국어를 공부하며 한국 문학을 읽고 있는데 당신 웹사이트가 유용한 자원이 되고 있다”는 내용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몽고메리 교수는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한국 문학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5월부터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한국 작가를 등록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해왔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좀 더 쉽게 한국 문학 정보를 얻게 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위키피디아에 한국 작가 188명을 새로 등록했고, 352명의 정보를 갱신했다. 한국 작가 25명의 사진은 직접 찍거나 출판사 등에서 제공받아 새로 등록했다.

한때 그는 한국을 생소하게 여기던 전형적인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적도, 자란 적도, 공부한 적도 없다. 그런데 어쩌다, 왜 한국 문학 알리기에 나서게 됐을까.



한국인 친구와 쌓은 ‘한국식 우정’

몽고메리 교수가 어릴 적 살던 집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실은 흡사 도서관 같은 풍경이었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책벌레였다. 법률가인 아버지는 물론이고 엄마, 동생, 일가 친척까지 모두 책 읽는 게 취미였다. 그 역시 소설과 비소설 가릴 것 없이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자연스레 외국 문학도 많이 읽었고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의 소설도 읽어보곤 했다.

하지만 독서광에게도 한국 문학은 금시초문이었다. 영어로 번역된 한국인 소설책조차 별로 없었다. 한국과의 접촉은 초등학교 때 본 한국인 급우가 전부였지만, 어울리는 무리가 달라서 친하진 않았다. 한국이라고 하면 6·25전쟁과 북한만 떠오를 뿐이었다.

미국인에게 한국 문학은 생소했다. 칵테일 파티를 가면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가 누구냐” “러시아 작가 중에 누굴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딱 떠오르는 작가가 있었다. 하지만 사교 파티에서 한국 문학과 작가는 언급조차 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자란 뒤 캘리포니아의 한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일하던 1995년경, 30대 중반이 돼서야 우연히 한국인과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선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온 박종혁 씨(45)가 근무하고 있었다. 중남미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가난한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안면을 트고 지내던 어느 날, 박 씨가 대뜸 물어 왔다.

“맥주 마셔요?”

“그렇다”고 답하자 “그럼 우리 맥주 마시러 가자”는 제안이 뒤따랐다. 한국인과 처음으로 소통한 날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로 친구가 됐다. 박 씨는 어느 날 몽고메리 교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한국 식당에 가보지 않겠어요?” 흔쾌히 승낙하자 삼겹살과 소주를 파는 식당으로 그를 안내했다. 몽고메리 교수는 이날 처음으로 김치라는 음식을 눈으로 봤다. “이 빨간 건 뭐냐”고 물었다. 박 씨는 “김치라는 음식인데 맛이 강하다. 쌀밥과 함께 먹는다”고 말했다. 한국인 친구는 “한국 음식을 먹어 보라”거나 “한국 문화를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설명을 해주면서 궁금한 것에 답을 해줄 뿐이었다.

몽고메리 교수는 이때 한국과 미국은 우정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서의 우정은 좀 더 진지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 ‘친구’라고 하면 관계가 굉장히 가깝고 친한 사이를 의미하잖아요. 너무 친하다는 의미가 강조되다 보니 한국에선 대학을 졸업하면 더이상 친구를 만들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도 많죠. 반면 미국에선 누구든 쉽게 친구라고 불러요.”

박 씨와 친해지면서 깨달았다. 그와의 우정은 가벼운 우정이 아닌 진지한 우정, ‘한국식 우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베프(Best friend·베스트 프렌드의 줄임말)’로 부르게 됐다.



미국인 찰스 몽고메리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가 운영하는 ‘한국 문학 번역(Korean Literature in translation·한국어명 한국 현대 문학)’ 웹사이트(www.ktlit.com) 첫 화면. 개설 초기엔 한국인들이 주요 접속자였지만 이젠 세계인이 함께한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가 처음 대면한 한국 문학이다. 홈페이지 화면 캡처

한국 문학과 만나다

박 씨는 독서광인 몽고메리 교수에게 영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을 선물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당시엔 이 소설이 한국의 시대 상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지만, 권력관계와 따돌림에 관한 내용이라 생각하며 재밌게 읽었다. 다 읽은 뒤엔 “좋은 책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러자 박 씨는 또 다른 한국 소설을 선물이라며 건넸다. 몽고메리 교수는 그렇게 조금씩 한국 문학에 발을 들였다.

두 사람의 우정이 깊어진 2002년, 박 씨는 결혼을 앞두고 한국에서 치를 상견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박 씨는 “상견례 하러 한국에 갈 건데, 이번 기회에 한국에 여행을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때 몽고메리 교수는 처음으로 한국에 와 제주도와 광주를 오가며 2주간 머물렀다. 당시 그는 마케팅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직업에 조금씩 질려가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아름답고 새로운 나라로 보였다.

몽고메리 교수는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찾기로 결심했다. 이민을 준비하며 박 씨에게 “한국적인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 박 씨는 염상섭의 ‘삼대’ 번역본을 건넸다. 내용을 읽어봤지만 난해하기만 했다. 당시 그는 한국의 역사가 어떤지, 분단문학이 뭔지도 잘 몰랐고, 소설이 쓰인 시대적인 상황도 모르고 있었다. 몽고메리 교수는 “책이 영어로 번역된다고 해도 맥락을 모르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완전히 한국적인 소설은 난해하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지금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를 좋아하는데, 이건 한국 문화를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끔찍한 책’이 될 수 있어요. 당시 한국의 역사적인 상황이 어땠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한국 사회에서 남녀의 지위가 달랐다는 것 등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을 모를 경우죠.”

몽고메리 교수는 ‘한국 문학을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다. 자신이 가진 마케팅 관련 지식을 활용하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국 문학 알리미로

컴퓨터 활용만큼은 자신 있었다. 전 세계인들과 한국 문학을 연결시키기엔 인터넷을 활용하는 게 효과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사람 누구나 찾아와서 한국 문학 정보를 얻고, 각자의 소감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2006년 1월 ‘한국 현대 문학’이라는 블로그 형식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몽고메리 교수는 이곳에다 책을 읽은 감상문을 올렸다. 2008년 한국에 온 뒤엔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문학을 잘 알진 못했지만 괜찮았다.

“웹사이트 운영 초기에 올린 글을 읽어 보면 제가 도대체 무슨 글을 써놓은 건지 모르겠어요. 하하…. 그냥 책을 읽고 느낀 대로, 관련 정보를 파악하는 대로 올린 거예요.”

점점 많은 사람이 웹사이트를 찾아 그에게 e메일로 의견을 보내거나 감사를 표현했다. 그렇게 한국 문학을 알리다 보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생겼다. 외국인들은 한국 작가의 이름을 영어로 검색하는데, 작가 정보를 볼 만한 마땅한 웹페이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는 수많은 외국 작가들이 수록돼 있다. 하지만 한국 작가는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프랑스 러시아 일본 중국 등의 소설가들은 자세한 이력과 저서가 함께 수록돼 있었지만, 몇 안 되는 한국 소설가들은 고작 몇 문장이나 단 한 문단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소설가 신경숙은 당시엔 별도의 페이지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검색했을 때 작가의 이름이 중구난방으로 검색되는 것도 문제였다. 인터넷에서 소설가 박완서를 검색하면 ‘Park Wan Suh’ ‘Park Wan-seo’ ‘Park Wan-so’를 비롯해 10개가 넘는 제각각의 표기로 나왔다.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정보를 한곳에 모으자고 다짐했다.

위키피디아에 인물정보를 등록하려면 최소 3개의 믿을 만한 소스를 제공해야 한다. 몽고메리 교수는 책, 네이버 인물 검색을 활용하는 한편 출판사를 통해 자료를 확보하며 작가의 정보를 등록했다. 작가를 직접 만나 사진을 찍은 뒤 인물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한국 문학은 ‘담배’와 같다고 말했다. “담배는 처음에 한 대를 피우면, 그 다음부터 서서히 빠져들어 중독되잖아요. 한국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하나를 맛봐야 해요.”

몽고메리 교수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히트를 쳤을 때 기뻤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맛보면 언젠가는 한국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갖고, 한국 문학을 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 친구는 처음에 삼겹살과 소주를 사주면서 한국 음식을 맛보게 했어요. 제가 그걸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소개만 했죠. 그런데 20년쯤 지난 지금 전 한국에 와 있지 않나요? 한국 문학도 마찬가지예요. 외국인들이 일단 처음 발을 들여 놓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 도움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보람이 있어요.”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