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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오늘의 ‘돌부처’ ‘괴물’ 만든 재활의 神

입력 | 2015-02-12 03:00:00

LG 트레이너 출신 한경진 원장




오승환(왼쪽)과 나란히 포즈를 취한 한경진 선수촌병원 재활원장. 선수촌병원 제공

‘돌부처’ 오승환(33)은 단국대 1학년이던 2001년 겨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일명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수술은 선수 생명이 끝나는 걸 의미했다. 학교는 오승환을 야구부에서 내보내려 했다. 이전까지 아마추어 선수 중 팔꿈치에 칼을 대고 재기한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의 재활을 돕고 있던 한경진 트레이너(현 선수촌병원 재활원장)는 당장 학교로 달려가 감독, 코치를 설득했다. “오승환이 공을 못 던지게 되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책임지지 못할 말도 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3학년부터 서서히 에이스의 위용을 되찾은 그는 삼성에 입단해 최고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뒤 지난해부터 일본 프로야구 한신의 수호신으로 뛰고 있다.

LA 다저스의 ‘괴물 투수’ 류현진(28)이 한 원장을 찾아온 건 동산고 2학년이던 2004년이었다. 왼쪽 팔꿈치 인대가 끊어져 있던 그는 한 원장의 권유에 따라 국내 한 병원에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류현진은 이후 6개월간 매일같이 인천에서 서울 송파구의 재활 클리닉까지 2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니며 재활을 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그는 2006년 한화에 입단해 한국 최고 투수가 됐고, 2년 전부터 다저스의 선발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오승환과 류현진이 한 원장의 재활 클리닉을 찾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당시 한국에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위한 전문 재활 시설이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수술을 할 순 있었지만 선수들의 재활을 함께해줄 시간이 없었다.

청주대 체육교육과를 나온 한 원장은 프로야구 LG의 트레이너 출신이다. “테이핑을 잘한다”는 이유 하나로 1992년 LG 트레이너로 뽑혔다. 친구들에게 트레이너라는 글자가 박힌 명함을 주면 “너, 트레일러 운전하냐”는 대답이 돌아오던 시절이었다. 선수들 마사지나 해 주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딛고 10년을 열심히 일했다.

그 즈음 아마추어 선수들의 현실이 아프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불의의 부상 때문에 제대로 된 재활 기회도 없이 선수 생명을 마감하는 선수가 적지 않았다. 그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2001년 말 서울 송파구에 선수 전문 재활 클리닉을 세웠다. 오승환은 그의 첫 번째 고객이었다.

재활 클리닉만으로도 적지 않은 성공을 거뒀지만 한 원장은 2012년 몇몇 의사와 함께 수술부터 재활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설립했다. 아마추어들을 위해 뿌린 씨앗은 요즘 달콤한 과실이 돼 돌아오고 있다. 선수촌병원은 각 종목의 프로, 아마 선수들은 물론이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반인들로 항상 문전성시다.

한 원장은 “처음 재활 클리닉을 세웠을 때만 해도 사기꾼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오승환과 류현진의 수술 및 재활이 성공한 뒤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트레이너들의 위상도 많이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많은 프로 팀들이 트레이너 수를 크게 늘렸고 몇몇 구단은 코치 직함을 주고 있다. 그는 “요즘 수술 및 재활 성공률은 약 90%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보면 1000명 중 900명이 성공하지만 100명은 선수 생활을 접는다는 얘기다. 그 100명을 살리는 게 내 인생 목표”라고 했다.

최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을 위해 ‘부상 예방과 체력 관리를 위한 야구선수 가이드북’이라는 책을 냈다. 한 원장은 이 책의 대표 저자다. 그가 아마추어 선수들과 함께한 15년의 세월이 책 속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