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오피니언팀장
지난해 11월 지방법원이 1심 판결을 내놓았다. 피고 저축은행이 법을 어기지 않았고 따라서 임금 차액을 줄 이유도 없다는 내용이다. 법원은 피고 은행이 위반했다고 제기된 법률은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고 봤다.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한 처우)와 남녀고용평등법 8조(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다. 다만 피고 은행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한 헌법 제11조를 어겼다고 했다. 그렇다고 덜 지급한 임금을 줘야 할 근거는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 은행은 임금 차등 지급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접하는 적지 않은 일반인들은 “합리는 무슨…”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법원의 판결이 못마땅하다고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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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전체로 보면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을 약간 넘어설 뿐이다. 한 업종 안에서는 비슷한 일을 해도 원청업체 근로자들이 하청업체 근로자들보다 상당히 많이 받는다. 기업 안에서는 같은 생산라인에서 일해도 정규직 임금이 비정규직보다 더 많다. 한국노동연구원 김복순 책임연구원이 분석해 보니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의 39%에 불과했다. 4대 보험과 복지혜택 격차도 꽤 크다.
사정이 이러니 대졸자라면 기를 쓰고 대기업에 입사하려 한다. 졸업장만으로는 빈약하니 온갖 스펙을 쌓느라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다. 그에 앞서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숨 막힐 듯한 경쟁을 치른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교육시장의 왜곡까지 부채질하는 부작용을 낳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노사정이 기본 합의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원칙과 방향’은 바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첫발을 뗀 것이다. 하지만 타결까지는 산 넘어 산인 상황이다. 임금만을 본다면 많이 받는 근로자가 적게 받는 근로자를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갖가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대기업에 안착한 이들이 과연 스스로 임금을 깎을까.
나는 이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 나섰으면 한다. 당사자들에게 맡겨만 놓는다면 논의 시한인 3월까지 결론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다. 더구나 현재 노사정 참여자들은 진정한 대표라고 할 수도 없다. 노조 조직률은 10% 선을 가까스로 넘어설 뿐이다. 대기업 노조를 대표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참여하지도 않는다. 사용자단체들의 생각도 똑같지는 않다. 결국 상층부만의 리그인 셈이다. 이런 때 박 대통령이 노사를 직접 만나 대화하고 설득에 나선다면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대타협이 기적처럼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불통 논란을 잠재우는 효과는 덤으로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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