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사회디자인 연구소장
이는 우리 공직 선거 전반에도 해당하지만 견제·감시 장치도, 성과 평가도, 유권자의 관심도 더 부실한 협동조합장 선거가 유독 심하다. 2월 26일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전국 1328개 농협 수협 축협 산림조합장 동시 선거다. 여기저기서 후보 매수 추문이 불거진다. 6억 원 이상 쓰면 당선, 3억 원 이하는 낙선이라는 ‘6당 3락’ 소문이 떠돈다. 하지만 검찰과 선관위가 철저히 감시하고, 받은 사람도 10∼50배의 과태료 폭탄을 맞기에 돈 선거판이 부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조합장 권력이 이런 치명적 위험과 투자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 자체다. 선진국은 결코 이렇지 않다.
2013년 기준 지역농협 964곳의 조합당 평균 자산은 3030억 원, 정직원만 114명, 매출 총이익 131억 원, 순이익 19억 원이다. 이 천문학적 자산과 이익은 수십 년에 걸쳐 농업, 농민, 농촌 살리기 차원에서 제공한 각종 특혜의 산물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나 다름없는 신용사업(대출)이 주된 수익원이다. 조합장 임기는 4년이지만 연임 제한이 없고(현재 최고는 11선), 평균 연봉 1억 원에 수천만 원의 판공비가 주어진다. 홍보활동비, 경조사비, 조합원 선물비, 단합대회비 등을 합쳐 10억 원 내외의 교육 지원 사업비도 멋대로 쓸 수 있다. 신의 직장 소리를 듣는 조합 임직원에 대한 인사권도 있다. 사업자 선정 등 다양한 이권도 주무른다. 농협조합장 중 288명은 수백조 원의 자산과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농협중앙회장의 선거권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 개혁 및 농업, 농민 살리기 담론은 이 문제를 비켜갔다. 조합장과 임직원을 효과적으로 감시 견제 평가 심판을 할 수 있는 장치를 제대로 만들지 않고 단지 예산과 특혜를 늘려 배달 사고 규모만 늘렸을 뿐이다. 아파트 안에 재래식 변소를 만들어 놓고 냄새와 구더기 없앤다고 소독약과 향수를 잔뜩 뿌리는 식이라고나 할까. 농민 조합원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잘 받들 유능하고 충직한 종노릇을 할 전문 경영인을 모셔 오는 구조를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위탁선거법 역시 잿밥에 눈이 먼 많은 조합장의 기득권을 더욱 굳혀 주었다. 과열을 막는다는 구실로 알 권리, 말할 권리를 틀어막아, 후보자를 비교하고 평가할 기회(언론사 주최 대담 토론 등)를 없앴다. 예비 후보 제도도 없앴다.
결정적인 오류 내지 농간은 허술한 조합원(농업인) 자격 규정을 악용하여, 현직 조합장을 무조건 찍을 부정 조합원을 대거 집어넣도록 한 채 3·11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왜 이리 비실대느냐고? 후진적 지배 구조와 배달 사고 등으로 인해 돈과 사람이 너무나 헛되게 쓰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이 어디 농협뿐이랴!
김대호 사회디자인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