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 일본연구센터 소장
이 같은 성취는 개인과 국가에 닥친 수많은 도전과 희생을 극복하고 이룬 피땀의 결과다.
경제 부문만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온 것이 아니다.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가능해진 정치체제의 안정에는 이 땅의 민주적인 정치질서 구축을 갈망하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성취에 만족하여 국가의 장래 목표와 진로 설정에 방향감각을 잃은 나라들이 어떤 불행한 전철을 밟았는지를 냉전 이후의 일본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가운데 버블경제의 뜨거운 거품을 타고 둥실대는 듯했다. 그러나 그 직후 냉전 종결과 함께 안보의 최대 타깃이었던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국가 진로와 안보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심지어 자위대 무용론과 나아가 해체론까지 일각에서 제기됐다.
냉전 기간 중 세계 경제의 최대 수혜자였던 일본에 대해 그동안 안보의 짐을 대신 졌던 서방 각국이 일본을 겨냥하여 ‘무역전쟁’이라도 일으킬 듯이 벼르고 나오면서 일본 경제는 긴장, 긴축하기 시작하여 10년간의 장기 불황이라는 터널에 빠지고 말았다. 그 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자평(自評)이 말해주듯이 방황하다가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의 자리를 중국에 내주었고 근래 수년 동안 총리가 1년에 한 차례씩 바뀌는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다. 그 반동으로 나타난 것이 아베 신조 총리의 ‘강력한 일본’ 구축 전략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현상을 되돌아볼 때, 20년 전 일본의 방황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한국은 ‘단군 이래 가장 잘사는 시대’를 즐기고 있다는 한탄 섞인 자기도취 속에 경기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점점 골이 깊어지는 경제적 사회적인 격차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는 지도자는 정치권에서도, 경제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자고 나면 끔찍한 사건사고가 잇따라 터지는 ‘부실 사회’에서 선진국을 바라보는 국가 사회적 품격과 질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도덕률이 실종돼 가는 막가는 세상을 보는 듯하다.
지금 대규모 전쟁은 없다지만 이슬람 과격파 조직의 무차별 테러와 동아시아에서의 일본과 중국의 각축전이 일촉즉발이다. 내외의 험난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국가와 국민의 앞에 서서 이끌어 나아가야 할 정치주체들의 각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시기다.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 일본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