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DB
정동현 셰프
“야야, 그건 캐비아를 밥에 올려 버터랑 간장에 비벼 먹는 거랑 같은 거지.”
4차원 친구의 엉뚱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이게 말이야 당나귀야 싶었다. 도넛에 샴페인을 마신다고 해서 국가 기강이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그 도전정신이 낯설면서도 혹했다.
그런 마음이었을까? 업장에서 선배 셰프가 도넛을 디저트로 낸 적이 있다.
“도넛을?”
“응, 헤드 셰프가 디저트로 도넛을 낼 거라고 하더라고.”
얼떨결에 도넛을 만들어야 했던 콘은 그리스인 셰프였다. 마흔 줄이 넘은 그는 제빵·제과 경력만 20년이 넘었다. 제과·제빵 쪽으로는 못 하는 게 없고 묻는 즉시 백과사전처럼 척척 해답을 내놓았다. 그가 늘 들고 다니던 큰 공책에는 손으로 꼼꼼히 적은 레시피들이 사전처럼 A, B, C별로 적혀 있었다. D에는 당연히 도넛 레시피가 있었다.
재료를 잘 섞고 나면 반죽을 한다. 밀가루 반죽이 묻어나지 않고 깨끗하게 떨어져 나올 때까지, 탄력 있고 매끄러워질 때까지, 손빨래하듯이 치댄다. 쌀밥 먹은 돌쇠처럼 은근과 끈기로 반죽을 치대다 보면 때가 온다. 이 반죽이 두 배로 부풀면 동그랗게 성형을 하고 2차 발효를 한다.
그러고는 170도로 예열해 놓은 기름에 도넛 반죽을 집어넣는다. 튀기는 데는 5분이 채 안 걸린다. 다 튀긴 도넛은 너도 알고 나도 알듯이 뜨거울 때 설탕을 입힌다. 그 작업을 하고 있노라니, 어느새 코를 킁킁거리며 주방 사람들 시선은 도넛에 꽂혀 있었다. 설마 다 팔리진 않겠지, 저건 모양이 별로 안 예쁘니까 안 내놓겠지 등등 그들의 속마음이 훤히 보였다. 짤 주머니로 초콜릿 크림, 커스터드 크림, 산딸기 잼을 앙증맞은 도넛의 배가 터질 만큼 꾹꾹 집어넣으면 완성이다.
기름에서 갓 건져낸 튀김이 맛있듯이 갓 튀긴 도넛이 맛있는 것은 당연지사. 갓 딴 사과를 베어 문 것처럼 신선했다. 향긋한 계피와 레몬향이 코에, 달달한 설탕이 혀에 닿고, 보드랍고 촉촉한 속살을 지나, 안에 든 초콜릿과 크림이 입안에서 터져 나오자 우리는 어린이처럼 좋아했다. 콘은 아버지처럼 근엄하고도 경박스럽게 “으하하” 웃으며 만족스러워했다.
도넛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어린애고, 어른이고 모두 한마음이었다. 음식은 과거로의 여행이란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가 먹은 음식들이 우리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유산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먹던 음식을 지향한다. 다 커서도 어머니가 해준 집밥을 그리워하고, 세계적인 일류 셰프들이 할머니 적 레시피를 발굴하는 것도 그 이유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2)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테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정동현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