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욕조’를 쓴 이흥환 씨
이 주문서에는 미국 해군 소속 마셜 함장의 자필 서명이 담겼다. 작성된 날짜는 1908년 12월 21일. 윌리엄 태프트 당시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운하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자 군함을 타기 전, 선실에 필요한 물품 주문서였다. 키 180cm, 몸무게 150kg으로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뚱뚱했던 그에게 꼭 필요한 여행 준비물이었다. 이 주문서는 공문서이자 국가기록물로 미국 워싱턴DC의 내셔널 아카이브(국가공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다.
“문서 한 장으로 미국 역사의 맥을 잇고 후손들에게 이야기를 남겨준 겁니다. 국가기록물에 담긴 의미이기도 하지요.” ‘대통령의 욕조’(삼인) 저자인 이흥환 씨(사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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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가기록 시스템은 기록과 보관, 공개라는 세 개의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잘한 일뿐 아니라 잘못한 일도 적어야죠. 그래야 후대의 사람들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써 놓은 것은 보관돼야 하고요. 보관해 둔 것은 다 같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90억 장에 가까운 문서가 들어 있는 내셔널 아카이브는 누구나 찾아와 문서를 뒤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씨가 책을 쓸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내셔널 아카이브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공적 문서’뿐 아니다.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남자의 봉급 명세서, 제2차 세계대전 때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했다 부상한 한 사내의 진료 기록 등 일반인들의 기록도 남아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런 개인적인 기록물들이 길지 않은 미국의 역사를 풍성하게 한다”고 이 씨는 설명했다.
책에는 내셔널 아카이브에서 찾은 한국 관련 문서 59건도 소개했다. 1952년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과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면담록, 1973년 한국의 민감한 정치 상황에 관해 미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 사이에 오간 문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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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