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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작가 박완서와 맏딸 호원숙

입력 | 2015-01-22 03:00:00


엄마의 추억 1: 딸 넷, 아들 하나를 둔 엄마는 늘 집안일에 충실했다. 재봉틀로 자식들 옷을 만들고 찬바람 불면 뜨개질거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식 교육에도 열정적이었다. 맏딸을 경기여중에 보내기 위해 일본의 산수 문제집을 사다가 번역해 풀게 했다. 운동신경이 부족한 딸의 체육 점수를 올리기 위해 어두운 저녁 골목에서 던지기 연습을 시켰다.

▷엄마의 추억 2: 엄마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이 세상 누구보다 엄살과 호들갑을 싫어했다. 어쩌면 그런 성격 때문에 항상 차갑게 느껴졌고 엄마 앞에서 긴장을 가져야 했다. 1970년 우리 나이로 마흔 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흥분하거나 지나친 기쁨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했을 뿐이다.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오만함 같은 것이었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4주기를 맞아 맏딸 호원숙 씨(61)가 펴낸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에 담긴 내용이다. 수필가인 딸은 가족사의 소소한 장면을 하나하나 불러내 엄마의 내밀한 삶과 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다정한 엄마와 대찬 작가는 어떻게 하나로 합칠 수 있었을까. 엄마는 글 쓴다는 이유로 밥상을 소홀히 하는 법도, 오래 집을 비우는 일도 없었다. 노망이 든 할머니와 아픈 아버지 수발, 해마다 돌아오는 자식들 입시 등 일상의 노역을 회피하지 않았다. 엄마로서의 삶을, 죄다 글쓰기의 노역으로 풀어냈기에 한국 문학사의 보물인 작가 박완서가 존재할 수 있었다.

▷“소설의 거리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에, 버림받은 쓰레기 속에, 외면당한 남루 속에, 감추어진 추악한 곳에서 소설의 거리는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박완서의 1981년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이다. 삶에 대한 통찰력과 따뜻한 연민을 바탕으로 그는 이 땅의 현대사를 핍진하게 되살린 작품을 만들어 냈다. 생활과 문학이 동떨어지지 않았던 역경의 세월이 빚어낸 빛나는 결실이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