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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형구]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 보존해야

입력 | 2015-01-22 03:00:00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고고학

강원 춘천의 중도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된 중요한 곳이다. 강원도청이 외국투자자와 공동으로 이곳에 레고랜드를 건설하기로 했고 최근 문화재청이 이를 허가했다. 유적 파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이미 현지 시민과 학자들을 중심으로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중도 유적 보존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중도 유적은 1977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사를 시작한 데 이어 1980∼1984년 발굴했다. 주거지와 고인돌무덤(지석묘), 적석총 등 270여 기의 유적이 발견됐다. 경질무문토기, 타날문토기, 무문토기와 철촉, 철도자 등이 포함돼 있어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기원 전후의 철기시대 유적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를 ‘중도식토기’라고 부른다. 이 토기는 서울 풍납토성에서 출토되는 ‘풍납동식토기’와 같은 계통으로 독특한 토기 양식이다.

2010∼2013년의 ‘4대강 살리기’ 사업 때는 춘천의 강원문화재연구소와 예맥문화재연구원이 이곳에서 추가로 유적과 유물을 대량 발견했다. 주거지 917기, 고상가옥 9기, 저장구덩이 355기, 환호(環濠) 1기, 고인돌무덤(지석묘) 101기 등 모두 1400여기의 유물은 청동기시대 중기(기원전 9세기∼기원전 6세기)의 것들로 국내 최대의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어림잡아 이 지역에 3000∼4000명의 주민이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가 밀집한 지대의 중심 구역에는 둘레가 404m(내부면적 1만 m²)나 되는 방형 환호가 있었다. 긴 도랑은 짐승이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해자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런 주거지에서는 고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청동단검과 청동도끼, 옥도끼가 출토됐다. 모두 지도자의 상징적인 유물이다.

이 밖에 석기를 제작하는 작업장을 갖춘 공방과 저장창고까지 있는 걸 보면 당시 경제 활동이 왕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공간 남쪽으로는 경작구역과 무덤구역을 갖추고 있다. 100기가 넘는 고인돌 무덤이 크기별로 질서 있게 만들어져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중도 유적은 일종의 성곽과 같은 구획을 갖춘 청동기시대의 대단위 도시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역사 발전 단계를 따진다면 고조선이 국가 단계로 발전하던 시대에 해당한다.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이런 유적지가 발견됐다면 아마 몇 십 년에 걸쳐 진지하게 발굴 작업을 벌였을 것이다. 강조하지만 중도 유적도 경주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다. 이런 귀중한 유적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라진다면 어떻겠는가. 레저나 관광시설도 중요하지만 유적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고조선시대의 역사를 볼 수 있도록 원상태로 복원하는 게 더 중요하다. 게다가 중도 유적은 단시일에 발굴된 유적이라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더 발굴에 매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도 유적은 우리가 잊고 있는 고조선의 또 하나의 실체일 수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아주 장구한 역사 유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도 유적 전체를 영원히 보존하고 세밀하게 조사, 연구해 고조선시대 역사를 되살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최근 랴오닝(遼寧) 성 우하량 홍산문화의 적석총과 적석 제단 유적을 보존하는 작업을 벌였다. 우리 돈으로 1700억 원이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1년여 만에 대형 유리 돔을 씌웠다. 그런데 우리는 1000억 원의 외자를 들여와 중요한 고조선시대의 유적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 옳지 않다. 중국의 문화유산 보존정책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놀이시설을 허용하기보다는 중도 유적을 보호하는 게 더 급하다.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고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