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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칼럼]공정사회 갈증 키운 ‘조현아의 갑질’

입력 | 2015-01-20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차가운 감옥에서 한겨울을 보내고 있을 사람에게 또 한 번의 매질을 가하는 일이 솔직히 내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검찰 공소장과 승무원들의 증언으로 마침내 전말이 드러난 ‘땅콩 회항’ 사태를 보면 새록새록 분노가 치민다.

대한항공 전현직 승무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평소에도 욕설과 막말을 달고 살았다. 재벌가 오너이기 이전에 최고 수준의 학교 교육을 받았던 엘리트라고 믿을 수가 없다. 승무원은 물론이고 아버지뻘 임원에게도 “이××, 저××” 하며 욕하는 것은 일상이어서 ‘땅콩 회항’이 폭로됐을 때 직원들은 왜 이것이 뉴스감이 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너 일가가 일등석에 타면 대한항공은 비상이 걸린다. 경력이 오래되고 역량이 가장 뛰어난 승무원이 배치된다. 아무 지적을 받지 않고 오너 일가가 내리면 최상의 칭찬이라고 한다. 하루는 오너 일가 중 한 사람이 여승무원의 얼굴이 ‘호박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사무장을 질책했다고 한다. 사무장의 채근을 받고 해당 여승무원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고 한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는 코미디언 이주일의 대사인 줄만 알았더니 실제로 있는 일이었다.

조 전 부사장이 검찰에 출두하며 눈물을 내비쳤지만 수치심과 모멸감의 눈물일 뿐, 진정한 반성의 눈물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는 지난해 12월 12일 국토교통부 1차 조사를 받은 직후 여모 상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뭘 잘못했느냐. 사무장이 잘못했으니 오히려 나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땅콩 서비스’를 직접 하지도 않은 박창진 사무장이 잘못한 건 무얼까. 그건 머슴 주제에 주인마님에게 대들었다는 것 아닐까. 공소장에 따르면 박 사무장은 이미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서 비행기를 세울 수 없다고 말했지만 조 전 부사장은 “상관없어. 네가 나한테 대들어. 얻다 대고 말대꾸야”라고 말했다. 사십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감옥에서 진정으로 참회의 시간을 가질지는 모르겠다.

백화점 주차요원을 30분씩이나 무릎 꿇려 갑질의 새로운 모델이 된 ‘백화점 모녀’의 행태도 생각해볼 점이 많다. 폐쇄회로(CC)TV로 드러난 사건의 실체는 간단하다. 차를 빼달라고 했던 주차요원이 날씨가 추워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몸을 푼 동작을 백화점 모녀가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들이 방송에서 한 발언이 걸작이다. “때릴 수 없어 무릎을 꿇렸다. 사회 정의를 위해 그렇게 했다.”

백화점 모녀는 무릎을 꿇린 행위를 ‘사회 정의’라고 했고, 조 전 부사장은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억울해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과는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크다. 국민의 절망감은 이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정의론’을 쓴 존 롤스는 정의를 공정성이라고 말한다. 2011년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공정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점수는 53.3점이었다. 지금은 점수가 더 나빠지지 않았을까. 혹자는 ‘을’이 연대해 ‘갑’을 응징해야 한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

공정성은 게임의 룰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룰을 정하고 운영하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피해자들이 매번 여론몰이로 가해자를 단죄하는 사회도 정상은 아니다. 갑질을 하는 사람은 언제든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으면 일부의 일탈이 이토록 파괴력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갑질 논란은 공정사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갈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