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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의 발상의 전환]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네 번째 기단

입력 | 2015-01-13 03:00:00


일러스트 김영진 작가

늘 지나치며 보던 광장의 조각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있다면?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 있는 네 번째 기단(대좌) 위의 조각은 자주 바뀌는 것으로 유명하다. 설치조각품이 바뀔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참신하다.

이 광장은 영국을 정복하려던 나폴레옹의 야심을 꺾었던 1805년의 트라팔가르 해전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방 모서리에는 당시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허레이쇼 넬슨 제독 상을 중심으로 세 개의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서북쪽의 기단은 160여 년간 빈 채로 남아 있었다. 자금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왕립예술협회(RSA)는 이 골칫거리 공간을 두고 아이디어를 냈다. 1999년부터 공모를 통해 새로운 현대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정된 작품은 1년에서 1년 반 정도 전시된다.

영국 작가 레이철 화이트리드는 ‘네 번째 기단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그는 놀랍게도 기단 자체를 주물로 뜬다는 발상을 했다. 비어 있는 기단을 형상화한 ‘모뉴먼트’(2001년·그림)가 설치됐다. 그의 조각은 투명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기단을 거꾸로 뒤집어 그 거울 이미지를 만든 셈이다.

누구나 조각품 자체는 유심히 보지만 조각을 받치는 기단은 눈여겨보지 않는 법이다. 화이트리드는 이렇듯 중요하지만 무시되는 공간, 간과되는 대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대상을 입체로 살리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거꾸로 뒤집는’ 작업 방식은 옷장, 방, 집으로까지 확대됐다.

화이트리드에 이어 이 기단에 오른 작품으로는 장애인 미술가의 임신한 몸을 조각한 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2005년), 현재 설치돼 있는 카타리나 프리치의 새파란 ‘수탉’(2013년) 등이 있다. 조각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발상으로 시작된 트래펄가 광장의 네 번째 기단은 오늘날 영국의 현대조각을 대표하는 공간이자 세계적 미술 명소가 됐다. 2001년 화이트리드의 작업은 그중 가장 돋보인 사고의 전환이라 하겠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