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아내-두 아들에 보낸 애틋한 그림편지 감동… 가족관객 줄이어
11일 서울 종로구 현대화랑 이중섭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출입구 옆 벽에 설치된 메모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빽빽하게 붙은 메모지마다 이중섭의 가족 사랑에 감동한 여러 세대 관람객의 솔직한 소감이 담겼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현대화랑.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을 관람하던 양정윤 씨(37)가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전시실 한쪽에서 상영 중인 다큐멘터리 ‘이중섭의 아내-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축약 편집본을 본 그의 어머니는 “마음이 먹먹하다”며 한발 앞서 갤러리를 떠났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이중섭과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의 사랑과 애달픈 이별 이야기를 담담히 그렸다.
주말을 맞아 가족 단위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난 때문에 떠나보낸 가족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이중섭의 작품을 보며 눈가를 훔치는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영화 ‘국제시장’처럼 이 땅의 옛 세대가 겪은 역경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아우른 감동이 전시 공간 곳곳에서 겹쳐졌다.
‘나의 귀중하고 유일한 천사 남덕 군. 당신만으로 하루가 가득하다오. 마음속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포옹하고 있소.’ ‘내가 제일 좋아하고 언제나 만나고 싶은 나의 태현 군. 아빠는 빨리 태현 군과 만나고 싶어서 오늘도 열심히 그림을 그렸단다’ ‘나의 착한 아이, 태성 군. 아빠의 그림을 보고 “아빠는 다정해서 정말 좋아”라고 엄마에게 얘기했다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
현대화랑은 “개막 후 6일간 1900여 명의 관람객이 화랑을 찾았다”고 밝혔다. 전시실 출구 앞에 마련한 ‘중섭 씨에게 한마디’ 메모판에는 200여 장의 메모지가 빼곡히 붙었다. ‘가슴속에 뭔가 쿡 박혀버린 것 같아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족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품고 버틴 의지에 박수를 보냅니다’ ….
이중섭 가족은 1950년 6·25전쟁 중 제주 서귀포시 변두리 마을 이장 집에 거처를 얻었다. 네 식구가 살았던 4.3m²(약 1.3평) 골방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전시했다. 훗날 야마모토가 “힘들었지만 함께 있어 행복했다”고 회고했던 시절이다. 먹을 게 없어 바다로 나가 게와 조개를 잡아먹었다. 담뱃갑 속 은박지에 아들 태현 태성과 노니는 바닷게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그렇게 태어났다.
애타는 그리움을 화폭에 담아내던 이중섭은 영양실조와 간염을 앓다가 1956년 9월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홀로 누워 숨을 거뒀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