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씨는 한글을 전혀 읽지 못하는 ‘문맹(文盲)’이다. 경북 경주시의 한 시장 바닥에 해물과 채소를 펼쳐놓고 팔며 겨우 생계를 유지해 왔지만 2013년 5월부터는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 윤 씨가 경주의 지인 집에서 임모 씨(68·여)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폭행을 당해 왼쪽 넷째손가락을 크게 다친 것이다. 완치에 6주나 걸리는 데다 병원에서 “형사사건 연루자는 건강보험 처리를 해줄 수 없다”고 해 수술비와 입원비가 250만 원이나 들었다. 윤 씨는 별다른 수입이 없어 이자가 높은 ‘카드론’으로 250만 원을 대출받아 병원비를 냈다.
윤 씨에게 상해를 입힌 임 씨는 지난해 3월 28일 법원의 약식명령으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곧바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윤 씨는 아무 잘못 없이 손가락을 다쳐 대출 이자조차 제대로 갚기 힘든 처지가 된 것도 서러운데 법정에서 증인선서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해 눈총을 받는 현실이 참담했다. 결국 사건담당 검사에게 “세상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문맹인 것도 서러운데 빚까지 져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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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청은 경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연계해 윤 씨의 나머지 병원비 50여만 원을 대신 내주고 긴급생계비 80만 원을 지원했다. 윤 씨가 문맹인지라 서류를 꾸미는 모든 작업은 김 법무관과 피해자지원센터 측이 도왔다. 이후 윤 씨가 “아직 세상이 따뜻하다”며 자신이 파는 전복을 잔뜩 싸와 건네자 김 법무관과 피해자지원센터 측은 연신 거절하다가 결국 전복을 받고 윤 씨에게 전복 값 10만 원을 건넸다.
검찰은 범죄 때문에 다친 피해자에게 각종 구조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사정(司正)기관’의 인상이 강한 탓인지 이 제도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검찰은 지난 한 해 범죄피해자 320여 명에게 구조금 70억여 원을 지원했다. 전치 5주 이상의 피해자가 지원 가능 대상이지만 사정에 따라 그 이하의 부상도 지원할 수 있다. 박지영 대검찰청 피해자인권과장은 “범죄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