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능경봉에서 2015년 맞은 양승태 대법원장 山上인터뷰
‘50년 등산 마니아’인 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이 민일영 대법관(오른쪽) 등 법원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강원 평창군 대관령 능경봉 정상에 올라 을미년 새해 첫 일출에 환호하고 있다. 평창=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판결 바탕으로 새 질서 만들어 가야”
양 대법원장은 먼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비난하는 세태를 우려했다. 그는 “법원의 종국적 결론에 따라 분쟁을 종식시키고 그 바탕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게 우리 헌법적 합의이자 민주국가의 당연한 전제”라며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판결이 틀렸다면서 대립한다면 우리 사회는 대립만 계속되고 사회의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당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 간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를 놓고 양측이 대립할 때 연방대법원의 결론에 미국 전체가 승복한 예를 들면서 “고어 후보도 결론이 마음에 안 들었겠지만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이런 정신이 헌법정신을 인정하는 자세”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과거로 역행하고 있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 “사법부가 법을 해석하는 것은 법의 정신을 찾아가는 건데 꼭 이념적 배경과 결부지어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관료화 지적에 대해서도 “법관들이 자유분방한 사고방식 위에서 재판을 하는 경향이 오히려 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다양성은 중요하지만 사안마다 70% 이상은 동일한 결론이 나와야 사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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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문제에 대해선 “꼭 법관 출신을 대법관으로 지명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며 복합적인 사정에 따른 것으로 앞으로는 다소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취임 이후 가장 아쉬웠던 점에 대해 “소통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려고 진정한 노력을 해왔는데 올 초 수년 전에 재판을 한 사안인 황제노역 사건이 부각이 돼 그동안의 노력이 빛이 바래 정말 안타까웠다”고 털어놓았다.
○ 50년 등산 마니아…야영 솜씨 수준급
1948년 1월생인 양 대법원장의 야영 솜씨는 수준급이다. 몇 차례 망치질이 빗나갈 때도 있었지만 지주를 세우고 망치질을 하는 모습은 전문가 못지않았다. 양 대법원장은 기자에게 “(야영과 새벽 등산을 하려면) 내의로 면 옷을 입고 오면 안 된다. 내의를 아예 안 입고 오는 게 낫다”며 자신의 옷을 들춰 보이기도 했다. 살짝 드러난 맨살은 비록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군살 없이 단단해 보였다. 이때 체감온도가 영하 17도였다. 그는 라이터에 줄을 달아 옷에 매달고 있기도 했다. 버너 등에 불을 붙이는 데 필요한 라이터는 야영의 필수품인데 기온이 영하로 많이 떨어지면 켜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늘 체온이 전달되도록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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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대법원장 일행은 1일 오전 3시 50분경 일어나 떡국으로 요기를 한 뒤 곧장 등산을 시작했다. 체감온도 영하 21도의 추위 속에 오전 6시 40분경 대관령 남쪽 산맥에서 최고봉인 능경봉 정상에 올랐다.
어둠 속에서 한 시간가량 기다리자 정상 동쪽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이윽고 오전 7시 42분. 쇳물에 시뻘겋게 적셔진 듯한 2015년 을미년 첫 해가 동해를 물들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었다. 어린아이처럼 표정이 환해진 양 대법원장은 “최근 본 일출 중에 제일 멋진 일출이야. 하나 둘 셋 야호!”라고 외쳤다.
그는 일행과 주변의 일출객들에게 “지난해 세월호 침몰 같은 안타까운 사건을 겪으면서 모든 국민이 1년의 절반 이상을 우울하게 보냈다. 이 일출을 보면서 지난 아픔을 씻고 희망찬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며 덕담을 건넸다.
평창=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