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내 개인전 여는 러 출신 화가 블라디미르 쿠시
블라디미르 쿠시의 ‘Diary of Discoveries’. 바다를 향해 열린 창가의 책장이 하나둘 떠올라 까마득히 날아오른다. 작가는 “인간의 이성적 추구(책)가 한때 순수한 영혼(새)을 속박하는 듯하지만 결국 영혼을 자유롭게 날아오르도록 하는 길이 될 수 있음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그림 속에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은 없다. 길의 계단과 난간, 양쪽에 갈라 도열한 나무, 해변의 새하얀 주택 군락이 한결같이 또렷하다. 캔버스에 삽입한 소재의 정체는 또렷하지만 ‘그래서 무엇을 그린 것인가’를 자문하면 모호해진다. 22일 미술관에서 만난 쿠시는 “나를 초현실주의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상 내 작업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미지로 은유적 의미를 전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와 현실세계의 유사성은 예술가의 기술을 증명하는 요소다. 이미지가 사실적일수록 작가가 제시한 환영에 그림을 보는 이가 수월하게 공감한다. 25세 때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1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지금 추구하는 ‘은유적 리얼리즘’ 스타일을 확립했다.”
“미술 작품이 퍼즐을 표방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건 심오해 보이고 싶은 작가의 욕망이 낳는 결과물일 뿐이다. 항상 어떤 식으로든 언어로 설명 가능한 이미지를 그리려 한다. 물론 해석의 정답은 없다. 그림을 본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이 모두 타당하다. 첫 번째 언급한 작품은 ‘Diary of Discoveries’다. 인간 본연의 순수성에 이반하는 이성이 추구하는 것이 결국 순수한 영혼의 자유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Daisy Games take 2’. 기다림, 에로티시즘, 고독 등의 정서를 또렷한 형상 속에 모호하게 뒤섞었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줄곧 또 스케치를 했다. 줄줄 터져 나오는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드는 시간이 늘 부족하다. 아이들은 누구나 예술가의 상상력을 갖고 있다. 철이 들어 이성으로 무장하면서 상상력을 잃어버리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그 아이를 품고 있다. 상상과 이성의 연결점을 되찾는 것이 관건이다. 내 그림 속 사실적 은유는 바로 그런 연결을 만드는 장치들이다.”
―예수와 제자들을 각양각색 꽃으로 치환한 ‘최후의 만찬’은 진지한 기독교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