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우리은행장 인선 개입]
다른 금융회사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융기관들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 감사, 사외이사 등 요직에 정치권, 대선캠프 참여 경력과 청와대의 영향력 등으로 임명된 ‘정치(政治)금융’ 인사가 5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앞뒤가 뒤바뀐 행장 선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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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우리은행 행추위가 처음 구성됐을 즈음 이미 차기 행장에 대한 정부와 청와대의 조율이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행추위는 위원 구성을 마친 뒤 보름 동안 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다가 지난달 27일이 돼서야 첫 회의를 가졌다. 같은 달 28일 경영권 매각 절차가 예정돼 있어 회의를 보류했다는 게 우리은행 측 설명이었지만 금융계 안팎에서는 “‘윗선’에서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행추위가 후보 선정 준비조차 못한 사이 금융계에서는 이순우 행장과 이광구 부행장의 ‘2파전’설에 이어 이 부행장의 대세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번 행장 선출 과정에서 하마평에 올랐던 한 후보 측 관계자는 “지난달 말 이 부행장을 내정한다는 청와대의 방침이 굳어졌다는 소문이 들려오면서 많은 후보가 레이스 참여를 포기했다”면서 “그간의 경험상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와 ‘정치금융’ 등 잇단 논란에도 결과가 바뀔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 정부 내에서조차 사전 내정설 확산
행추위는 처음 구성됐을 때부터 이달 5일 행장 최종 후보를 선출할 때까지 위원들의 명단은 시종일관 비밀이었다. 후보자나 정치권의 로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후 동아일보 취재진의 취재 결과 우리은행 사외이사 3명(박영수 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 오상근 동아대 교수, 최강식 연세대 교수)과 외부전문가 3명(송웅순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박태규 연세대 교수, 장경준 삼일회계법인 부회장), 정부대표 1명(조현철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등 7명이 행추위원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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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는 정부의 의중이 이 부행장으로 굳어가기 시작한 지난달 말부터 급변했다. 1일 이 행장이 연임 포기 선언을 하면서 행추위 안팎에서는 “서금회 논란으로 이 부행장의 장점들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며 이 부행장에 대한 동정론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5일 세 후보에 대한 심층면접 뒤에는 행추위원들은 “후보들 간의 차이가 확연했다” “이 부행장의 개인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보였다”며 이 부행장을 치켜세웠다. 이들의 태도 변화와 관련해 금융권의 전문가들은 “교수 등이 다수인 이들은 ‘윗선’의 뜻을 거스를 경우 향후 각종 위원회 참여 등에 불이익이 크다는 점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우리은행장 선출 과정에서 인사권을 거의 행사하지 못한 채, 사실상 청와대의 의중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압을 걸러 내거나 행추위에 자율을 보장하기는커녕 권력층의 ‘쪽지’를 행추위에 내려주기만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달 전까지 별다른 존재감이 없던 이 부행장이 갑자기 부상하며 행장에 낙점된 것을 두고 그 배후가 누구인지에 대한 추측이 관가에서도 무성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 청와대 실세라는 말도 있고, 충청권의 친박(親朴) 정치인이라는 설도 있는데 확인은 잘 안 된다”라고 말했다.
송충현 balgun@donga.com·장윤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