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사태가 혼란스러운 진실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조금만 확인해보면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하면서 몰아가는 자체가 문제”라며 ‘사실 확인 없는 보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정 씨와 갈등설이 불거졌던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바로 다음 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문건이 엉터리라고 보기만 어렵다. 박 대통령은 과연 사실을 확인한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 씨는 2007년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난 이래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청와대 내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 비서관들과 연락도 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에 따르면 정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조 전 비서관이 올해 4월 10, 11일 청와대 공용 휴대전화로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오고 ‘정윤회입니다’라는 문자가 와도 받지 않았더니 이재만 비서관이 자신에게 “(정 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 씨와 이 비서관 사이에 서로 연락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조 전 비서관은 내부 감찰과 인사 검증, 대통령 친인척 관리 업무를 해오며 3명의 ‘문고리 권력’ 비서관들과 적잖은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올해 1월 ‘정윤회 동향 문건’을 작성한 박모 행정관(경정)과 조 비서관은 각각 2월과 4월 청와대를 떠났다. 당시 청와대는 조 전 비서관의 경질에 대해 “조 비서관이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 했다”고 설명했지만 정 씨의 전화를 외면한 바로 다음 주여서 보복 인사였을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이 파문의 확산을 덮는 데 급급한 비서진의 말만 듣고 사실 관계를 예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청와대의 인사기강 해이를 감독할 김기춘 비서실장은 여태 아무런 감(感)도 잡지 못했던 것인가, 알고도 자리 보전만 꾀했던 것인가. 박 대통령은 언론의 문건 유출 보도를 계기로 불거져 나온 국정시스템의 왜곡 징후를 바로 봐야 한다. 박 대통령 발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정 문란을 똑바로 파악하고 일벌백계해야 국정이 바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