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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의 생각돋보기]인터스텔라와 숭고의 미학

입력 | 2014-11-29 03:00:00


영화 ‘인터스텔라’.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만일 당신이 어느 날 경기 과천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캄캄한 전시실 안에 들어갔다고 치자. 환하게 밝은 반대편 벽면에서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내리고 그 아래 대리석 대(臺)에는 하얀 수의를 입은 사람이(아마도 시체가)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맞으며 누워 있다. 물소리 가득한 어둠 속에서 관람객들은 앞을 응시하고 있지만 좀처럼 장면의 변화는 없다. 참을성 없는 몇몇 관객이 자리를 뜨려 할 즈음 마침내 흰옷 입은 사람이 누워 있는 자세 그대로 빳빳하게, 낙하하는 물을 거슬러, 아주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매우 느린 슬로모션이다. 단조로운 상승의 운동 끝에 드디어 인간이 사라진 화면은 다시 세차게 내리꽂히는 물과 물소리로 가득 찬다.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작품 ‘트리스탄의 승천’이다.

혹은 강원도 오크밸리의 ‘뮤지엄 산’이나 일본의 나오시마 아니면 미국 관광길에서 당신은 우연히 캄캄한 방의 벽면을 손으로 더듬어 들어가 본 적이 있을 수 있다. 그때 어둠 속에서 갑자기 빛의 사각 프레임이 나타나면서 방 전체가 투명하고 얇은 막으로 덮여 있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느꼈을 것이다. 빛의 사각 프레임은 역시 빛으로 된 삼각형 쐐기 모양의 장막과 선(線)들로 분할돼 마치 빛으로 가득 찬 또 하나의 방이, 또는 무한대의 공간이 저 너머에 펼쳐지는 듯한 환영(幻影)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이다. 빛의 조각가로 일컬어지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들이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이 디지털 세상에서 한없이 느린 속도로 삶과 죽음, 시간과 초월성을 고통스럽게 형상화하고, 존재와 비존재, 또는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 있는 빛을 이용해 우리 눈의 착시를 끌어내는 이 작품들은 분명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미학적 체험이다. 은총, 계시, 황홀, 원시성, 숭고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그러나 거기 어디에도 미(美)는 없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 느끼는 즐거움(快)을 우리는 이 작품들 앞에서 느낄 수 없다. 즐거움은커녕 오히려 처음에는 불쾌감을 느낀다. 예술작품이란 미의 추구이며 미의 표현이라고 배웠는데, 그렇다면 이것들은 예술작품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다음 순간 더욱 강렬한 쾌감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일순간 억눌렸던 생명력이 곧이어 한층 더 강력하게 분출하는 것 같은 강한 쾌감이다. 이것을 칸트는 ‘미’와 엄격하게 구분하여 ‘숭고’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미와 숭고는 우리의 예술적 체험을 구성하는 중요한 두 가지 성질이다. 예컨대 장미꽃은 미를 발생시키고, 우리에게 미적 쾌감을 준다. 그러나 지진해일(쓰나미) 같은 거대한 파도는 ‘숭고’다. 그것은 우리의 구상력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를 우선 좌절시키고 불쾌하게 만들지만 이어서 더욱 강하게 우리를 끌어당긴다. 구상력이란 뭔가를 표현하는 표상의 능력이므로, 결국 숭고란 우리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감정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인기가 높다. 오늘날 공상과학(SF)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유례없는 인기도 숭고 미학에서 그 설명을 찾을 수 있다. SF 영화들은 거대한 우주와 고도의 테크놀로지 앞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뭔가 알 수 없는 미지의 불안감,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디스토피아적 예감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대로 숭고 미학과 부합하는 것이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