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FTA 10년의 명암]
올해 한국의 교역액이 사상 최단 기간에 1조 달러를 돌파한 데에는 FTA가 큰 역할을 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 관세가 철폐되거나 낮아져 한국이 엔화 약세 등 악재 속에서도 그나마 선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FTA를 통해 무역 규모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FTA 활용 전략을 적극적으로 마련해 관세 절감 등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관세 절감 효과 10년 새 400배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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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미 FTA 협상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선진시장 공략이 시작됐다. 체급이 다른 나라와 FTA를 체결하면 위험하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대규모 내수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논리가 앞섰다. 한국은 2011년에 EU와, 2012년에 미국과 FTA를 발효시키면서 세계 최초로 미국, 유럽과 동시에 FTA를 맺은 나라가 됐다. 이달 들어서는 한중 FTA를 타결해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경제영토의 73%를 내수시장으로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FTA로 한국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관세 절감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FTA로 아낀 관세액 규모는 2004년 2000만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약 400배인 79억9000만 달러로 늘었다. FTA를 맺은 지 10년 된 칠레에 대한 한국의 수출액은 2003년 5억2000만 달러에서 지난해에 4.8배인 24억6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2012, 2013년 2년간 한미 간 교역액은 2010, 2011년 2년에 비해 1.4% 늘었다. 같은 기간 경기침체로 미국의 전체 교역증가율이 ―0.2%를 보인 것을 고려하면 선방한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관세 철폐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고 건설, 유통, 엔터테인먼트 등 상대국의 서비스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도 크다”며 “한국경제의 새로운 활력소이자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한 것이 FTA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 유럽 무역적자는 날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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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FTA 체결 후 한국이 손해를 본 대표적인 사례다. FTA 발효 전인 2010년 한국은 EU에 83억 달러 무역수지 흑자를 냈지만 지난해에는 74억 달러 적자를 봤다. 올해 1∼10월 적자 규모(75억 달러)가 이미 지난해 전체 수준을 넘어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FTA 체결 후 승용차, 기계류 등 수입이 늘어난 데다 중동의 정정 불안으로 에너지 수입 지역을 유럽으로 다변화하면서 북해산 원유의 도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최근 방한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산업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무역적자 확대 문제를 거론하며 균형무역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축수산물 피해 확대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국은 쇠고기 3대 수입국인 호주, 미국, 뉴질랜드와 모두 FTA를 맺었다. 발효 15년 뒤 쇠고기 관세 철폐가 조건이다. 한우가 고급육 시장을 장악하고는 있지만 싼값을 무기로 수입이 늘어나면 국내 축산농가에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맞춤형 현지 진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엔화 약세로 가격경쟁력을 회복하고 중국은 첨단기술로 무장하면서 한국의 수출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며 “FTA를 적극 활용해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기존 수출시장의 수성 전략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