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전도사’ 변신한 히말라야 14좌 완등 엄홍길 대장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20일 히말라야 셰르파 마을로 유명한 네팔의 남체바자르 인근에서 트레킹 도중 환하게 웃고있다. 엄 대장 뒤쪽으로 눈 덮인 콩데(해발 6187m)의 봉우리가 보인다. 남체바자르=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엄 대장은 그동안 높은 산을 자주 올랐다. 그러나 요즘은 상대적으로 평탄한 길을 걷는 트레킹에 푹 빠져 있다. 수직 운동에서 수평 운동으로 바뀐 셈이다.
엄 대장은 14일부터 22일까지 또다시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네팔 카트만두를 출발해 루클라, 남체바자르 등의 트레킹 코스를 돌고 왔다. 엄 대장은 다음 달부터 동아일보와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가 함께 추진하는 대한민국 숲길 트레킹에도 함께 나선다. 트레킹을 즐기면서 예전보다는 좀 더 많은 여유를 찾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광고 로드중
한창 높은 산을 찾아다닐 때, 엄 대장은 산에 가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정상에 서 봤습니까?”라고 되묻곤 했다. 최근의 엄 대장에게 트레킹에 빠진 이유를 물으니 “걸어보면서 인생을 보셨습니까?”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엄 대장은 걷기를 통해 인생의 보너스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꽃과 나무들의 각도까지 눈에 들어오게 됐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 미래도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의 애틋함도 더 느끼게 됐다고 했다. 오랫동안 고산(高山) 등반을 하면서 죽음의 위기, 육체적 고통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던 자신에게 트레킹을 통한 천천히 걷기는 세상이 준 선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 너무 행복해’라고 외쳐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고통을 견뎌내느라 몸과 마음이 고생을 했는데, 하늘이 이제 쉬라고 보너스를 준 것 같아요.”
엄 대장의 오른쪽 다리는 왼쪽 다리보다 가늘다. 오른쪽 발목은 굽혀지지 않는다. 요즘 엄 대장과 함께 트레킹을 하는 이들은 자주 이 오른쪽 다리에 대해 묻는다. 엄 대장은 1998년 안나푸르나 제1봉(해발 8091m)에 4번째 도전할 당시 오른쪽 무릎부터 발목까지 세 군데가 부러져 대수술을 받았다. 엄 대장은 “7600m 지점을 오르던 때였다. 추락하는 셰르파(히말라야 고산지대 가이드)를 살리려다 내 발목에 줄이 감겼고 발목이 180도 돌아간 상태로 10여 m를 추락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셰르파는 목숨을 건졌지만 수술을 맡은 의사가 엄 대장에게 다시는 산에 오르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수술 10개월 만에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다. 4전 5기였다. 정상에서 펑펑 울었다.
엄 대장은 함께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지칠 때면 이 오른쪽 다리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조금 경사진 길을 걸을 때 저는 발목이 잘 안 돌아가서 발 앞쪽만 사용해 걸어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보고 대단한 기술을 본 것처럼 따라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아픈 나도 길을 걷는다’며 다친 다리와 발목을 보여줘요. 산악인 엄홍길도 똑같이 상처를 입는 사람이라는 건데, 그 순간 저와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이 없어지더라고요.”
광고 로드중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