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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장택동]개헌의 조건

입력 | 2014-11-18 03:00:00


장택동 정치부 차장

‘개헌파’ 의원들이 움직이고 있다.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의원들이 10일 국회에 개헌특위 구성 결의안을 낸 것이 신호탄이다. 정기국회가 끝나자마자 개헌론의 불을 지피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다.

첫걸음은 순조롭지 못한 모습이다. 당초 결의안에 이름이 들어있던 새누리당 의원 10명 가운데 4명이 마지막 서명을 철회했다. 표면적으로는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개헌론 파동’ 이후 더욱 민감해진 개헌 논의에 앞장서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개헌에 찬성한다는 한 중진 의원도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개헌에 추진력이 붙기 위한 3대 요소로 △국민들의 공감대 △대통령의 의지 △단일화된 개헌안을 꼽았다. 1987년에는 직선제 개헌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워낙 강했고, 여야 모두 찬성했으며, 대통령도 이에 동조했기 때문에 개헌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했다.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이 개헌에 관심이 없고, 박근혜 대통령은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으며,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들조차 권력 형태에 대해 의견이 갈라진다.”

여기에다 ‘국회에 대한 신뢰’라는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권력 형태로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제가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의 일부를 국회로 분산한다는 것이 핵심 명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곱지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9명은 ‘국회가 잘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의원들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 보인다.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국회의 권한을 늘리는 데 국민이 찬성하겠느냐” “지금 국민이 대통령보다 국회를 더 신뢰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렇다”고 시원하게 대답하는 의원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개헌론자들은 내년 상반기까지가 ‘개헌의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국회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최소한 국회가 헌법과 법률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다. 당장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헌법 54조 2항에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국회는 2002년 이후 이 조항을 지킨 적이 없다. 예산안 처리 시한을 준수하기 위해 개정 국회법(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은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 규정은 올해 처음 적용된다. 그런데 벌써부터 ‘좀 늦출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국회 스스로도 지키지 않는 헌법을 고치자고 호소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회가 개헌을 주장하기에 앞서 헌법을 준수하려는 노력부터 기울이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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