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원, 의결권 대리행사 못해… 상장사 3곳중 1곳 감사선임 비상
이 회사 최대주주의 지분은 약 52%. 하지만 상법상 감사 선임 시에는 최대주주가 아무리 지분이 많아도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의결정족수(전체 주식의 25%)를 맞추려면 소액주주로부터 찬성표 22%를 추가로 끌어와야 감사를 선임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진 섀도보팅을 통해 쉽게 정족수를 채웠는데 이젠 수만 명의 소액주주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주총에 출석하거나 위임장을 달라고 요청해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년 1월 섀도보팅 제도의 폐지를 앞두고 상장사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섀도보팅 제도란 상장기업이 주주총회 의결정족수가 부족할 때 예탁결제원에 주주들이 맡긴 주권에 대한 의결권 대리행사를 요청하는 제도다. 기업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대표이사 선임, 감사 선임 등 경영상의 주요한 결정을 자의적으로 내린다는 비판에 따라 작년 5월 폐지가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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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섀도보팅 폐지 앞두고 대혼란
상장기업이 섀도보팅을 요청할 경우 예탁결제원은 주주들이 맡긴 주권에 대해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찬반투표 비율대로 의결권을 행사한다.
주주들의 주총 참석이 저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1년 도입됐지만 적지 않은 기업에서 대주주 중심의 주총 운영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섀도보팅 폐지가 코앞에 닥치자 상장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주총에서 보통결의 요건(참석주주의 50% 이상 찬성, 전체 주주의 25% 이상 찬성)을 맞추지 못하면 사외이사 선임은 물론이고 재무제표 승인도 받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뒤 상장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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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란 없도록 대안 마련 시급
섀도보팅으로 주총이 무산될 경우 기업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상장사협의회는 자산 2조 원 이상의 1개 기업이 감사위원회 구성요건 미달로 상장 폐지될 경우 시가총액은 4조8289억 원 감소하고 사외이사 구성요건 미달로 상장 폐지되는 경우에도 1개사 기준으로 시총 5770억 원(삼성전자 제외)이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위기의식이 커지자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4개 경제단체는 최근 섀도보팅 제도 폐지에 따른 주총 운영 정상화를 위한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일부에서는 섀도보팅 제도 폐지를 2년 유예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들의 주식 보유 목적이 주총 의결권 행사보다는 단순 투자 목적인 경우가 많아 기업이 의결권 행사를 독려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발행주식 총수 규정을 삭제해 보통결의는 출석의결권 과반수 찬성으로, 특별결의는 출석의결권 3분의 2 이상 찬성만으로 결의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인 섀도보팅 제도를 언제까지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소액주주가 언제까지나 의결권 행사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주총에서 의결정족수 대비 찬반 비율, 기관투자자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비율 등을 공시해 주주들에게 알권리를 제공하고, 투자자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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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주주총회 의결정족수가 부족할 때 예탁결제원에 주주들이 맡긴 주권에 대한 의결권 대리행사를 요청하는 제도. 예탁결제원은 주총 의결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참석 주주의 의결 비율대로 해당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림자투표(섀도보팅)’로 불린다.
김재영 redfoot@donga.com·박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