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한 활동 중에 인지도 하락 위험 무릅쓰고 필명 사용
소설가 박생강으로 새롭게 태어난 박진규 작가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원래 신작 장편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라고 적혀 있었지만 작가의 양해를 구해 이름으로 바꾸었다. 열린책들 제공
등단 10년 차 소설가 박진규 씨(37)는 이름이 불만이었다. 그는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장편소설 ‘내가 없는 세월’ ‘보광동 안개소년’ ‘교양 없는 밤’을 출간하며 소설가로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 소설가란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박 씨는 “필명을 만들면 소설가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이 그를 이름이 비슷한 소설가 박민규, 같은 문학동네 소설상 출신 김진규와 혼동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우연히 대형 서점에 들렀다가 건강서적 매대 위에서 ‘여자는 생강이 전부다’란 책을 발견했다. 생강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아 충동적으로 필명을 ‘박생강’으로 정했다. 그는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생각의 강’, 성자(saint)와 악당(gang)의 혼성 같은 심오한 의미로 받아들여 주기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은 그의 필명을 잘 불러주지 않은 탓이다. ‘마르시아스 심’으로 신문사에 칼럼을 보내면 ‘심상대’로 게재되는 식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날 냉소적 장난질과 괴상스러운 자학에 빠진 소설가 ‘심상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학인들까지 내 필명에 대해 실실 웃으니 뻗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직적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를 마르시아스라는 민주적 사고의 예술가가 넘어서지 못한 탓이다. 혁명의 기개가 부족한 제 탓”이라고 했다.
필명을 쓰려면 기존 인지도를 포기해야 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유명 문학상을 받기도 한 젊은 작가는 오로지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최순결’이란 필명으로 소설 ‘4월의 공기’(곰)를 3월 출간했다. 당시 출간을 담당한 소설가 김도언은 “그 작가가 실명으로 책을 출간할 때보다 절반 정도만 팔렸다. 필명을 쓰면 인지도를 활용 못하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도언도 내년 여름 시집을 출간할 때는 시인 ‘황이리’란 필명으로 낼 계획이다. 그는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에서 따왔다. 내가 쓴 소설과 연결짓지 말고 시만 봐달라는 뜻에서 필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