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를리치 설치작 ‘대척점의 항구’
‘눈속임’ 기법을 즐겨 쓰는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신작 ‘대척점의 항구’. 물 위에 배가 비친 듯한 착시 효과가 즐겁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가장 높은 전시실 ‘서울박스’의 전시물을 지난해 11월 개관 후 처음으로 바꾸었다. 첫 전시작인 서 작가의 ‘집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속의 집’ 대신 들어선 작품은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41)의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가로세로 각 23m, 높이 17m인 대형 공간에 경쾌한 색감의 배 6척이 따뜻한 가로등 조명을 받으며 조용히 닻을 내린 항구의 모습을 표현한 설치 작품이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지구의 정반대편, 즉 대척점에 위치해 있어요. 두 문화권의 소통을 위해 상호 연결을 상징하는 배와 항구를 끌어들였죠.” 전시를 하루 앞두고 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에를리치는 “후원사가 한진해운이어서 배를 오브제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웃으며 “아니다”라고 했다.
‘대척점의 항구’를 감상하는 지점은 모두 3곳이다. 지상 1층에선 ‘물 위’의 항구가 보인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검은 ‘물 속’에 들어간 듯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배들을 올려다볼 수 있다. 해가 진 다음이라면 전시장 밖에서 유리로 된 서울박스를 들여다보자. 서울 한복판에서 뜬금없어 비현실적인 항구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9월 13일까지.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