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넘긴 광역버스 입석금지… 출퇴근 현장
승객들이 광역버스 입석 금지 시행 100일 만인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 래미안아파트 앞 정류장에서 경기 일산으로 향하는 1500번 버스에 앞다퉈 오르고 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직장인 조효진 씨(27·여)는 최근 출퇴근 시간대에 서울에서 경기 분당을 오가는 광역버스를 탈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버스는 ‘만차’라는 팻말을 붙이고도 좁은 통로와 출입문 계단까지 입석 승객을 빼곡히 태우고 시속 100km를 훌쩍 넘기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서로 몸이 끼어 움직이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입석 승객들은 버스가 급제동을 하거나 핸들을 좌우로 돌릴 때마다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교통사고가 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끔찍했다.
퇴근 시간대인 23일 오후 서울 중구 백병원 앞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 방면으로 향하는 5500-1번 버스 안에 입석 승객이 가득 들어차 있다. 승객들은 손잡이나 좌석 등받이를 잡고 겨우 몸을 지탱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취재팀이 23일 오후 6∼7시 경기 북부로 향하는 승객이 많은 서울 영등포구 당산래미안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입석 금지에 해당하는 5개 노선 버스를 지켜보니 한 시간 동안 지나간 24대 중 21대가 입석 승객을 가득 태웠다. 나머지 3대도 입석을 거부한 게 아니라 좌석이 여유가 있었다. 같은 시각 경기 남부로 가는 길목인 서울 중구 백병원 앞 정류장도 입석조차 불가능할 만큼 버스가 가득 차야만 무정차 통과했다. 서울에서 분당으로 가는 광역버스 9401번에 직접 타서 입석 승객 수를 세 보려다 인파에 시야가 가려 실패할 정도였다.
좁은 통로에 서서 끼어 타는 승객이 만연한 상황에서 좌석에 앉은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바라는 건 사치에 가깝다. 취재팀이 23일 오후 7시 10분 경기 용인 명지대∼서울역을 오가는 5005번 버스에 타 보니 좌석에 앉은 40명 중 안전띠를 맨 승객은 4명에 불과했다. 운전기사가 한남대교를 넘어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 “안전띠를 매달라”고 안내방송을 했지만 아무도 따르지 않았다. 이 버스는 시속 100km를 넘나들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이대로라면 세월호 참사나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처럼 입석 승객을 가득 태운 광역버스가 사고로 대형 인명 피해를 낸 뒤에야 “예고된 인재(人災)”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참사”라며 부랴부랴 관련 분야에 대해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처가 되풀이될 게 뻔하다. 교통안전공단이 시속 25km로 달리는 버스가 6m 아래로 떨어져 구르는 상황을 인체 모형을 통해 직접 실험해 보니 안전띠를 안 한 승객은 안전띠를 맨 승객보다 다칠 가능성이 18배나 높았다. 어린이는 48배나 차이가 났다. 본보와 입석 버스를 동행 취재한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출퇴근 광역버스에 선 채로 타거나 좌석에 앉아서도 안전띠를 안 매는 습관은 매일 편리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맡기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