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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유학의 산실, 지혜의 보따리 풀다

입력 | 2014-10-30 03:00:00

광주 월봉서원, 시민의 품으로 한걸음




광주 광산구 백우산 기슭의 월봉서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닫혀 있는 공간이었다. 엄격한 예법과 고리타분한 유학의 산실이라는 이미지 탓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던 이곳에 화사한 문화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윽한 달밤에 가야금 연주에 취하고, 찻잔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공간으로 변했다.

월봉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고봉 기대승 선생(1527∼1572)을 기리는 곳이다. 고봉은 32세에 문과 을과에 급제해 당대 최고 석학인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을 만났다. 퇴계와 1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벌인 논쟁은 한국 유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원 측은 근대화 과정에서 사설 교육기관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잃었던 서원이 배움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소통’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시민에게 한 발짝 다가가기 위해 6년 전부터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인문학 프로그램 ‘살롱 드 월봉’을 연다. 지역의 교수, 철학자, 종교인, 음악인, 화가 등이 나와 시민과 이야기하는 ‘사회담론의 장’이다.

‘자기 바라보기’ 즉 성찰 프로그램들도 인기다. 서원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철학스테이’는 매달 두 차례 열린다. 서원 좌측 산길을 따라 고봉 선생의 묘소까지 1.5km를 오르는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일상 속에서 지친 심신을 달랜다. 다례체험, 달빛 전래놀이, 고봉과 퇴계의 우정을 생각하며 편지 쓰기 등을 하며 1박 2일을 보낸다.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꼬마철학자 상상학교’와 ‘청소년 이기(理氣) 진로 교실’, 요리를 통해 철학을 만나는 ‘철학자의 부엌’ 등 고봉의 삶을 체험하는 가족단위 교육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고봉학술원 강기욱 기획실장(52)은 “최근 고봉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서원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며 “선생의 정신과 지혜가 시민들 속에 살아 숨쉬고 계승되도록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고봉의 철학과 삶을 기리고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문화제가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월봉서원에서 열린다. 광산구와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고봉문화제추진위원회(위원장 기규철)와 문화기획사 라우가 주관한다.

‘제2회 고봉학술대회’와 함께하는 문화제 주제는 ‘고봉에 잔물지다’. 선생의 따뜻한 시선으로 광산구를 잔잔하게 물들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31일 장애인이 참가해 만두를 빚고 떡을 만드는 ‘철학자의 부엌’을 시작으로, 선생의 시문학과 국화·매화 이야기가 곁들여지는 ‘고봉을 이야기하다’가 이어진다. 11월 1일 월봉서원 교육관에서 열리는 ‘고봉학술대회’는 홍승직 순천향대 교수의 사회로 선생과 교류한 인물 탐구를 통해 고봉의 삶을 반추한다. 문의 062-960-8272, 943-5383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