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 15년간의 변천사
‘막장 드라마’에 꼭 나온다! 막장연기 4종 세트
막드란 ‘극단적 여성 인물 중심’ ‘주제의식(권선징악)의 반복’ ‘가족이란 사적 영역에 집중’이라는 기존 통속극의 얼개를 최대치로 밀어붙여 욕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장르다. 막드의 원조는 임성한 작가의 ‘보고 또 보고’다. 일일극 역대 1위인 시청률(57.3%)에 TV연기대상까지 휩쓸었지만 겹사돈이란 설정에 과도한 우연성으로 ‘꼬고 또 꼬고’라는 놀림을 받았다. 임 작가와 라이벌 서영명 작가는 ‘인어아가씨’(2002∼2003년) ‘금쪽같은 내 새끼’(2004∼2005년) ‘하늘이시여’(2005∼2006년)를 잇달아 내놓으며 “완성도와 상관없이 폭력에 가까운 자극”(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으로 시청률 지상주의에 편승했다.
막장드라마 15년 변천사
최근 종영한 ‘…장보리’는 또 다른 세대의 막드다. 전문가들은 막장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장르의 혼종교배가 이뤄진 점을 흥행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3.0의 새로운 경향, ‘막장의 고품격화’(김 평론가)다.
‘…장보리’의 시청률을 따라 막드 3.0의 특징을 짚어보자(시청률 조사회사 TNmS 자료). 드라마가 15%를 넘어선 건 20회(6월 15일·15.4%)로 주인공 장보리(오연서)의 출생 비밀이 드러난 시점이다. 라이벌 연민정(이유리)이 ‘우연히’ 이 사실을 알아채고, 여느 막장처럼 악녀가 비밀을 쥠으로써 갈등은 깊어진다. 한편에선 로맨틱코미디에서 차용한 장보리와 이재화(김지훈)의 러브라인을 주기적으로 반복해 막장의 외연을 넓혔다.
20%를 넘긴 28회(7월 13일·20.4%)와 25%를 돌파한 36회(8월 10일·27%)에선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누구라도 ‘대장금’을 떠올릴 법한 한복집 경연이 본격화한다. 여기에 주인공 친엄마(김혜옥)도 악당이 되는 ‘변형’과 대장금에서 주인공 이영애의 스승이던 배우 양미경을 장보리의 멘토로 세우는 이종교배가 이뤄진다.
35.8%를 찍은 마지막 52회(10월 12일)에선 막드의 기본인 ‘권선징악’과 ‘가족의 화합’으로 돌아간다. 막드 3.0은 천인공노할 악질적 범죄까지 다루지만 가족끼리 치고받을 뿐 사회적 국가적 범주로 확대되진 않는다. 그런데 이 회엔 주목할 대목이 있다. 김 작가의 히트작 ‘아내의 유혹’을 오마주(혹은 패러디)한 ‘점만 찍은’ 민소희의 등장이다. 막장이 드디어 자기복제까지 한 셈이다. 막장은 묻는다. “그래, 욕하려면 해봐. 그렇다고 안 볼 거야?”
○ 막드란 이름의 공룡
‘…장보리’에서 보듯 막드 3.0의 경쟁력은 다변화 다각화다. ‘에덴의 동쪽’(2008∼2009년)에서 싹을 틔워 ‘제빵왕 김탁구’(2010년)를 거쳐 지난해 ‘야왕’까지 막드 3.0은 주부용 드라마라는 좁은 시장에서 벗어나 주류로 편입했다. 게다가 권상우 수애 송승헌 같은 특급스타들도 막장코드에 합류하며 ‘막장의 규모화’(정 평론가)를 이끌었다.
막드란 공룡은 언제까지 번성할까. “김순옥 임성한 작가가 건재해 당분간 흐름이 이어질 것”(김 평론가)이란 낙관과 “문화주도층이 케이블과 종편으로 넘어가며 동력을 잃었다”(정 평론가)는 비관이 엇갈린다. 이영미 교수는 막드의 생존력을 ‘뽕짝’에 빗댔다. “트로트도 한때 대중문화의 주류였죠. 이젠 밀렸지만 명맥이 끊어지진 않습니다. 가끔 대박도 나올 거고요. 하지만 시청률에 얽매여 동어 반복을 거듭하는 한 회복하긴 어렵겠죠. 막장의 자기 파괴는 이미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