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펫’으로 에로물 감독 딱지 떼는 박범수 감독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에서 만난 박범수 감독은 “성인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면 변태 취급 받는다. ‘레드카펫’이 오해를 풀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성인물 감독이 된 계기는….
“모바일 콘텐츠 회사에서 일했는데 성인물 매출만 높으니까 회사가 아예 제작에 나섰다. 그 후 성인영화 감독 아래서 대본을 쓰고 연출도 하게 됐다. 학원에서 영화 만드는 법, 시나리오 작법을 배우면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6박9일’(‘1박2일’ 패러디) 같은 예능 에로물을 비롯해 기존 성인영화의 틀을 깨는 시도를 했다.”
“보통 촬영이 하루, 길면 이틀 걸린다. 제작비는 200만∼400만 원 정도, 블록버스터급은 800만 원도 쓴다. 다작을 하니 사장이 좋아했지. 성인영화는 많이 찍을수록 남는다. 이번 영화는 20억 원이 들었는데 얼떨떨하다.”
―상업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성인영화를 만드는 게 부끄럽진 않았지만 부모님께 ‘저 아이덴찌찌(‘아이덴티티’ 패러디) 찍었어요’ 할 순 없었다. 서른 살 전에 성인영화계를 접수하고 올라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에로물 감독 출신이라는 게 걸림돌이었나.
―서러운 일이 많았나 보다.
“성인영화 쪽에선 다 겪는 일이다. 여배우들은 남자친구가 생기면 연락이 끊긴다. 아내에게 직업을 숨기고 일하는 남자 배우도 있다. 3, 4년 상처받으면 극복된다. 후배들이 푸념하면 ‘넌 아직 멀었다’고 얘기한다.”
―‘15세 이상’ 영화로 만든 건 이제 성인영화계와 선을 긋겠다는 건가.
“원래 19금으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모니터 시사에서 불쾌해하는 관객이 많았다. 노출 장면을 작은 화면에서 보다가 큰 스크린으로 보니 충격적이긴 했다. 정사 때문에 정서가 끊기면 안 된다. 사실 내 특기가 에로는 아니다. 뭘 찍어도 야하게 찍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야기가 강한 편이었다. 시사회 때 아버지가 오셔서 처음으로 내 영화를 보셨는데 찡했다. ‘인생은 아름다워’ ‘노팅힐’처럼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시나리오도 여러 개 써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