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금년도 정부의 재정계획은 관리재정 기준으로 적자가 25조5000억 원으로 GDP의 1.7%로 되어 있으나, 경기둔화로 재정수입이 크게 차질을 빚을 것 같다. 최근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7월 말 현재 세금이 걷힌 실적은 계획 대비 58% 수준으로 지난 4년의 같은 시점 평균에 비해서 6% 정도 낮다고 한다. 이 추세가 유지되어 금년 전체로 세금 수입이 계획 대비 5% 부족하다고 가정하면, 액수로는 10조8000억 원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금년도 재정적자 규모는 GDP 대비 2.4%에 달할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가 성숙기에 들어간 점을 감안하면 불황 시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2% 이내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내년에도 재정수지 전망이 밝지가 않다. 지금 국회에 가 있는 정부의 예산안은 이미 2.1%의 적자 편성이다. 정부의 2015년 재정수입은 실질 GDP 성장률 4.0%와 물가상승률 2.1%를 전제로 한 것이다. 여러 가지 지표로 볼 때 내년에 물가상승률이 그렇게 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년에도 실제 재정적자가 계획보다 더 커질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면, 이제부터 한국 경제는 만성적인 재정적자국의 길로 갈 위험이 있다. 현실적으로 대규모 증세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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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지금부터 재정건전성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국회는 두 가지 조치를 해야 한다. 하나는 재정적자나 국가부채의 규모를 사전에 법으로 정해서 이를 넘지 못하게 하는 재정준칙이며, 또 하나는 국회 예산정책처의 역량을 강화해서 국가재정 장기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서 예산을 수립하고 여러 안전장치를 만드는 일이다. 세계 주요국을 보면 법률에 의해서 재정건전성을 규율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법에 의해서 재정건전성을 담보하고 있는 나라이다. 미국은 지출을 늘릴 때는 다른 지출을 줄이든가, 세입을 증가시키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영국은 공공부문 순부채비율의 상한을 정해 놓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헌법에 재정수지균형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스위스 스페인과 폴란드도 헌법에 여러 가지 형태로 재정건전성을 강제하고 있다. 또한 많은 선진국은 50년 내지 75년의 장기재정전망을 토대로 나라 살림을 하고 있다.
경기 회복이 더뎌지자 정부는 엊그제 5조 원을 더 풀어서 경기를 살리겠다고 발표했다. 정치권은 구조조정이 힘드니까 재정 팽창을 통해서라도 경기를 살리려고 하지만, 이는 고스란히 국가부채로 남아서 다음 세대에 부담을 안기게 된다. 더 늦기 전에 국회가 스스로 나서서 재정준칙을 법제화해 재정적자의 한도를 정하고 국가부채를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기 시작해야 한다.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