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도전하라]<1>‘메뚜기 청년’ 김재학씨
“메뚜기로 만든 쿠키 드실래요?” ‘메뚜기 청년’ 김재학 씨가 10일 전남 강진에서 열린 메뚜기 축제를 찾아가 메뚜기를 재료로 만든 쿠키를 홍보하고 있다. 김 씨는 “메뚜기는 구호식품으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강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훤칠한 키에 탄탄한 몸매, 다부진 인상. 역기를 들거나 야구공을 쥐고 있을 것만 같은 청년의 손에는 작은 쿠키가 있다. 그는 이 쿠키에 인생을 걸었다고 했다.
허투루 하는 소리가 아니다. “한 달, 일 년, 십 년 단위의 계획까지 머리에 입력돼 있어요. 나는 젊고, 목표가 분명하고, 에너지까지 차고 넘치니 걱정할 게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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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쿠키가 무엇이기에 청년은 인생을 걸었을까. 겉보기엔 제과점에서 흔히 볼 법한 모양. 맛을 보니 담백하고 달달하긴 해도 그리 튀거나 특별하진 않다.
그런데 이 쿠키에는 국내,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재료가 숨어 있다. 정답은 메뚜기. 산이나 들에서 흔하게 봄직한 메뚜기가 쿠키의 재료로 쓰였다는 얘기다.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발상을 현실에서 구현해 낸 주인공은 김재학 씨(27). 전북대 고고인류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일단 쿠키 재료로 메뚜기를 쓴 이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올해 초 우연히 읽게 된 한 보고서가 계기가 됐다”고 했다. “유엔에서 쓴 미래식량보고서였어요. 글을 읽는데 활자가 점점 커지면서 내용이 머릿속을 탁 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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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곤충 식품을 만들어 세계 구호식품 시장에 진출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 길로 달려가 며칠 동안 관련 서적을 꼼꼼히 뒤졌다. 곤충전문가와 식품전문가 등도 만났다. 그 결과 메뚜기가 정답이란 판단을 내렸다.
그는 “국내 메뚜기는 대부분 식용으로 쓸 수 있다. 메뚜기의 단백질 함량은 100g 기준 쇠고기보다 3배 이상 많다. 동일한 사료로 나오는 생산량 역시 돼지고기보다 10배 이상 많은 것도 장점”이라며 예찬론을 펼쳤다. 사육을 위해 필요한 물이 적게 들고, 사육 공간 자체도 친환경적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단순히 돈벌이 목적으로 메뚜기 식량에 빠져든 건 아니다. 수익 창출이란 과제 앞엔 ‘남을 돕고 싶다’는 대전제가 붙어 있다.
어릴 적 개척교회 목사인 부모님을 둔 그의 유년 시절은 넉넉하지 못했다. 보통은 더 잘 먹고 잘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할 법한데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내가 크면 꼭 지금의 나처럼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야지.’ 그래서일까.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언제나 같았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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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 돈벌이로 생각했다면 진작 접었을 것”
‘메뚜기 청년’의 꿈은 조금씩 영글고 있다. 최근 그는 ‘SOL(Save One's Life)’이란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메뚜기 쿠키 시제품도 만들어 직접 홍보에 나서고 있다. 재료로 사용한 메뚜기는 대부분 국내에서 조달했지만 최근 중국에서 더 싼값에 수입하는 활로도 개척했다.
이렇게 오기까지 과정이 쉽진 않았다. 메뚜기로 구호식품을 만들겠다는 청년의 당찬 포부에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냉담했다. 정부, 학교 등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나 경진대회에 아이디어를 내도 모두 탈락. 짧은 시간 안에 수익 창출이 힘들어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낙담한 김 씨를 일으켜준 힘은 남을 돕겠다는 변하지 않는 목표. 김 씨는 “메뚜기 식품의 성공만이 그 목표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며 “단순히 돈벌이로 생각했다면 진작 접었을 것”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자금이다. 메뚜기 사육, 제품 가공, 대량생산에 이르기까지 일관생산체제를 갖추는 게 목표지만 확보한 자금은 아직 크게 부족한 게 사실. 김 씨는 “세계 구호시장 규모는 연간 100억 달러가 넘는다”며 “쿠키뿐만 아니라 전투식량, 에너지바 등으로도 활용 가능한 메뚜기 식품은 10년 안에 구호식품의 선두주자로 나설 매력과 잠재력이 넘친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최근 전북 생물산업진흥원에 메뚜기 식품에 대한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쿠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과기능사 자격증 공부에도 한창이다. 가공이나 제조는 중국에서 하면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조언을 들은 직후 중국 시장 정보수집 및 중국어 공부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내 도전에는 걱정하고 고민할 겨를도 없다”며 웃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