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박씨 등 무형문화재 이수자 3명, 문화재청 학예연구사 등 특별채용
최근 공직에 임용된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 이주영 양진환 박형박 씨(위 사진 왼쪽부터)가 다음 달 1일 개원하는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앞에 섰다. 양금을 연주하는 이 씨(아래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공연기획담당 학예연구사로 임용됐다. 문화재청 제공
갓일(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이수자 박형박 씨는 요즘 ‘투잡’을 뛴다. 낮에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무형유산원 공무원으로 일하다 밤에는 갓을 만드는 ‘입자장’ 장인으로 변신하는 것. 갓 장인은 제조공정에 따라 대나무로 둥근 테를 만드는 ‘양태장’과 테 위에 얹는 둥근 부분을 말총으로 엮는 ‘총모자장’, 이 둘을 합쳐 최종 완성품을 만드는 ‘입자장’으로 나뉜다. 박 씨는 “1주일에 월∼수요일 사흘만 일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에 임용돼 공직과 무형문화재 전수의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형유산원은 박 씨와 함께 무형문화재 이수자 2명을 더 채용했다. 이처럼 무형문화재 이수자를 공직에 특별 채용한 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비인기 분야여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무형문화재 이수자를 지원하는 동시에 이들의 현장 지식을 공직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로 이들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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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의 경우 갓을 찾는 수요가 워낙 적다 보니 이 일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빠듯하다. 박 씨는 “일이 험하고 손이 많이 가는데 보수가 박하다 보니 내가 어렸을 때 공방에 들어가는 걸 입자장이던 아버지가 싫어하셨다”고 털어놨다.
국악 이수자로서 첫 학예연구사가 된 이 씨가 전공한 양금 역시 무형문화재 기악 부문에서 비교적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가야금 거문고처럼 산조(독주곡)를 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이수자가 적기 때문이다. 이 씨는 “국악을 연주한 경험을 살려 국악 콘텐츠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 씨가 전수받은 임실필봉농악은 근대화로 마을 문화가 파괴되는 과정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전국 모든 마을마다 각양각색의 농악이 전해 내려왔지만 현재 보존단체가 조직돼 전통농악을 계승한 곳은 임실과 강릉, 평택, 진주 등 6곳에 불과하다. 임실 농악은 지리산권의 전라 좌도 농악답게 남성적 가락을 중심으로 공동체 놀이의 성격이 한층 짙다. 양 씨 역시 임실 농악에서 상쇠이던 부친에게 직접 장구 치는 법을 배웠다.
양 씨는 “농악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줄어 고사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농악을 하면서 현장에서 느꼈던 답답한 부분을 행정에 접목해 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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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씨에게 최종 꿈을 묻자 ‘끝내주는 농악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요즘 업무가 없는 목∼일요일에 휴일도 없이 연습과 공연에 매진하고 있다. 양 씨는 “공직에서 무형문화재 보존단체를 제대로 돕고 예술인으로선 아버지 뒤를 이어 훌륭한 인간문화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달 1일 공식 개원하는 국립무형유산원은 132개 종목으로 구성된 무형문화재의 보존과 전승을 전담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