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어떻든 그들은 물질적 성공과 성취가 곧 삶의 전부인 것처럼 지내다가도 흔들리는 삶과 서로 상반하는 가치 속에 어지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상 속에서 나의 행동과 삶의 방향에 시사점을 주는 자기 성장을 위한 철학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맞다. 그런 흔들리는 배를 지탱해주는 닻의 역할이야말로 이 시대에 철학에 바라는 역할일 것이다.
철학의 정의와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어원에서 보듯이 철학은 학문 일반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물리학만 해도 19세기까지 철학의 한 분야로 이해되어 왔다.
우리 주위에 윤리적 결정을 요구하는 사항은 너무 많으나 그러한 문제들은 종종 그 기본적 논의를 뛰어넘은 채 결론만이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중국에서의 장기 매매가 한국 뉴스에 회자되었으나 그것이 왜 사회적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철학적 논의가 이루어진다든지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 적은 없다. 장기 매매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나의 장기는 내 몸에 속하지만 (사고팔 수 있는) 나의 재산은 아니며, 더더구나 신성한 신체의 일부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몸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몸에 대해 내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이런 질문들은 사유재산, 신체에 대한 존엄성 등 많은 문제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초상권 문제도 그렇다. 최근 서울의 한 종합병원 환자들이 자원봉사활동을 오는 사회단체가 허락도 받지 않고 자신들의 얼굴이 들어간 홍보물을 만들어 초상권을 침해당했다며 고소했다. 이것은 초상권을 마치 재산권과 동일시하여 그것의 권리 소재를 따지는 것이나, 문제의 본질은 그것보다 깊은 문제, 즉 나와 나에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구성하는 사적인 나와 공적인 나와의 경계에 대한 중대한 논변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인격권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렇다면 인격권이란 무슨 뜻일까. 결국 사회적 통념과 법률적 판결 또는 그에 대한 철학적 논변이 모두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회의 정의, 법의 정의의 근간을 따지게 한다.
한국에서 한때 정의의 문제가 크게 관심을 끌고 인구에 회자된 것은 이러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과에 임용된 윤리학 전공 신임 교수는 세계적으로 철학적 관심의 추이가 윤리, 특히 실천윤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면서 많은 학생이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강의에 흥미를 갖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규범윤리학과 정치철학 이론들을 단지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사례들에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학생들에게 각종 사회적 이슈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게 하는 훈련을 시킬 때라고 본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각종 논쟁적인 법적 사례들, 예를 들어 군 가산점제도, 군대 내 동성 간 성행위 처벌, 성매매 여성의 처벌 등의 이슈들은 윤리학과 정치철학의 이론들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접점에 있다. 현재 이러한 사안들은 법에 의해 이미 옳고 그름이 정해져서 시행되고 있는 것들이지만, 진정으로 그런 법의 유권해석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