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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아경기 D-16]후련한 방망이… 태극마크에 꽂힌 그녀들

입력 | 2014-09-03 03:00:00

[나도 국가대표다]<3>첫 출전 여자 크리켓팀




인천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크리켓 여자대표팀 주장 오인영이 지난달 12일 인천 연수구 송도LNG종합스포츠타운에서 보호 장비를 착용한 채 타격훈련을 하고 있다. 인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014 인천 아시아경기 출전할 여자 크리켓 선수지망생 모집.’

지난해 10월 인천 시내 곳곳에 내걸려 사람들의 눈길을 끈 플래카드의 문구다.

7년 전 아시아경기를 유치한 인천 아시아경기지원본부는 고민에 빠졌다. 개최국으로 전 종목에 선수를 출전시켜야 하는데 협회조차 없는 크리켓이 문제였다. 2011년 9월 인천크리켓협회, 2011년 11월 대한크리켓협회가 부랴부랴 문을 열었다.

하지만 더 큰 어려움은 선수 모집이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김남기 인천크리켓협회 전무이사(48)와 나시르 칸 감독(45)이 지난해 봄부터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대학의 스포츠학과는 물론이고 답답한 마음에 인천 강화여중까지 찾아갔다.

덕분에 20명 남짓한 지망생을 모았다. 골프선수, 근대5종 선수, 주부 배드민턴 강사, 체육대생, 전 소프트볼 국가대표 등등. 간단한 테스트와 훈련을 거친 이들은 지난해 12월 말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표선발전을 위한 첫 번째 전지훈련이었다.

인천 아시아경기를 앞둔 한국 최초의 크리켓 여자대표팀은 올여름을 훈련으로 불태우고 있다. 파키스탄 선수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나시르 칸 감독(왼쪽)과 전지훈련에서 인연을 맺은 네팔 국가대표 출신 니라 코치(오른쪽)는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대한크리켓협회 제공

○ 국가대표로 뭉친 공포의 외인구단

“인영아, 우리 크리켓 한번 안 해볼래? 국가대표 모집하는데 네팔로 전지훈련을 보내준대.”

처음에 주장 오인영(25)의 마음을 흔든 건 크리켓이 아닌 공짜 네팔여행이었다. 아마추어 골프선수였던 그는 지난해 겨울 지원금 문제로 전지훈련을 가지 못했다. 네팔에 가고 싶었던 그는 선뜻 친구 박진습(24)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빨랫방망이 같은 배트로 공을 치는 것이라는 친구의 말만 믿고 그는 그렇게 덜컥 크리켓에 뛰어들었다.

국가대표로 확정된 선수 15명은 대부분 오인영과 비슷하다. 그나마 크리켓이라는 종목에 대해 들어본 건 소프트볼 국가대표 출신인 허미진(37)과 안나(27)뿐이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에 이끌려 크리켓에 첫발을 디딘 이들도 있다. 대학부 근대5종 선수였던 박진습은 일찍 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점이 늘 아쉬웠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운동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꿈꿔 보는 국가대표. 박진습은 그 네 글자에 매료됐고, 크리켓은 그에게 자신감을 찾아줬다.

맏언니 전순명(46)은 인천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최고령 여자 국가대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시절까지 배구선수였던 그는 국가대표 모집 플래카드를 보고 마음이 설�다. 못 이룬 꿈을 이뤄보고 싶었다. 국가대표가 된 그에게 지금 가장 큰 힘은 대학생이 된 두 아들과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다.

○ 신기한 운동? 이젠 삶의 목표!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어요. 공을 맨손으로 받는 것도 그렇고 배트로 공을 맞히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할수록 빠져드는 게 크리켓의 매력이에요.”(전순명)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국가대표로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면서 선수들은 국가대표라는 이름에 담긴 무게를 절감했다. 오전 6시 반 기초체력 훈련으로 시작한 하루는 오전 오후 하루 2번의 기술훈련, 저녁 웨이트 훈련까지 이어졌다. 인천 송도글로벌캠퍼스에서 합숙하고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휴일은 일주일에 단 하루. 그마저도 훈련으로 지친 탓에 외출은 생각하기 어렵다. 집에 간 적이 언젠지도 기억이 희미하다.

대표팀의 절반 이상이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다. 시속 100km가 넘는 딱딱한 공(여자 기준 약 132g)을 글러브도 없이 맨손으로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훈련 환경도 열악하다. 아시아경기를 위해 5월 준공한 인천 서구 연희크리켓경기장이 국내 최초의 경기장이다. 훈련은 문학경기장 지하나 프로야구 SK 2군 실내훈련장을 오가며 했다. 야외훈련은 인천대 제물포캠퍼스 운동장에서 모랫바닥에 매트를 깔아놓고 했다.

하지만 훈련이 이어질수록 선수들은 진지해졌다. 이들에게 크리켓은 이제 ‘신기한 운동’이 아닌 ‘삶의 목표’가 됐다. 막내 송승민(19)은 지난해 체대입시에 실패한 뒤 한동안 방황했다. 가천대 평생교육원 레저스포츠학과에 진학했지만 학업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크리켓을 만난 지금은 하루하루가 즐겁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일은 언니들과 또 어떤 연습을 할까’ 하는 설렘으로 아침이 기다려진다. 회사를 휴직하고 대표팀에 합류한 안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번째 국가대표를 달았다. 크리켓은 그에게 다시 꿈을 꾸게 해줬다.

○ 진짜 목표는 크리켓의 미래

“이번 아시아경기 때 꼭 메달을 따야 돼요. 그래야 다음 아시아경기에 또 나갈 수 있잖아요.”(송승민)

대표팀의 인천 아시아경기 목표는 남다르다. 처음에는 그저 1승을 기대했다. 1년도 제대로 훈련하지 못했는데 1승이면 대단한 거라고 모두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실력이 붙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크리켓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다. 이들은 이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서 크리켓을 국내에 널리 알리는 게 목표다.

송승민은 이번 아시아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이 해체되면 어떡하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좋아하는 크리켓을 실컷 하면서 나중에 지도자까지 해보고 싶은데 국내 크리켓 기반은 너무 취약하다. 그래서 이들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다른 거 포기하고 온 사람들인데 아시아경기 끝나고도 하고 싶은 크리켓을 계속할 수 있는 미래가 있어야 하잖아요. 메달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거 같아요. 크리켓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거, 그게 목표예요.”(오인영)






:: 크리켓 ::

영국에서 창안된 스포츠로 야구의 원조다. 배트로 공을 치는 점은 야구와 비슷하지만 진행 방식과 룰은 다르다. 137∼150m 너비의 타원형 경기장에 높이 약 81.5cm, 폭 약 23cm의 위킷(세로 막대 3개와 가로 막대 2개로 만든 문) 2개를 20.1m 간격으로 세운 뒤 타자 2명이 각각 위킷을 지키고 볼러(투수)가 공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타자가 공을 친 뒤 반대편 위킷에 서 있던 타자와 위치를 바꾸면 득점이 된다. 볼러가 위킷에 공을 맞히면 아웃이 된다. 팀당 11명으로 구성되고 타자 10명이 아웃되면 공수가 교대된다.




인천=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