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졸업과 함께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서울직업학교 교사로 근무한 3년여를 제외하고는 20년간 한우물을 판 송 명장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1세대. 당시 선진국 자동차 회사의 제조 설비를 벤치마킹하여 생산라인을 재편성하고 각종 설비의 국산화도 이뤘다. 1998년 기아자동차를 퇴직한 이후에는 당시 동료들과 함께 ㈜디피코를 창업했다.
㈜디피코는 자동차 개발과 제조 관련 기술을 파는 엔지니어링 기업. 국내 기업들의 경우, 내부 조직에서 관련 기술을 개발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엔지니어링 회사는 국내에서 디피코가 유일하다. 당연히 국내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0’. 그대신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 아시아 지역 기업들이 고객이다. 설비업체와 함께 해외시장에 진출했던 디피코는 이제 직원 170명으로 늘어났으며 매출은 전년대비 2배 성장한 240억 원을 목표로 한다. 기술력과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현장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송 명장은 직원들에게도 자신의 경험과 이론을 전수해주고 있다. 기능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정년은 없다”는 것이 송 명장의 생각이다. 그덕분에 디피코에는 정년이 없다. 개개인의 능력 활용이 가능한 시점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 송 명장이 기아에서 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신입이었던 직원이 지금 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정년이라는 제도로 20년, 30년 쌓은 고급 기술이 없어져 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디지털화 등에 조금 밀릴지는 모르지만 본인이 가진 경험과 기술을 후배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더불어 다양한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데 뒤지지 않도록 회사 내외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 역시도 현장에서 20년 이상 노하우를 쌓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발생해 조언을 구하면 충분한 답을 해줄 수 있다.
그런 만큼 예비 숙련기술인들을 교육시키고 길러내는 데도 적극적이다. 그 역시도 회사를 다니며 공부해 6개 부문의 국가 자격증을 취득했고 대학에 진학해 이론을 겸비한 기능인이 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걸음의 하나로 디피코는 22일 일학습병행제 개소식을 열며 새로운 예비숙련기술인 만들기에 들어갔다. 설계와 자동차를 전공한 특성화고, 전문대, 대졸에 이르는 15명을 신규로 채용했고 올해 안으로 15명을 추가 선발할 계획이다. 내부의 기술인력들이 강사가 돼 그들이 가진 살아있는 지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성공한 CEO보다는 후배를 양성하는 기능인의 삶을 살고 싶다는 송 대표는 기술인들이 전문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관심이 크다. 그래서 바쁜 가운데에도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우수숙련기술인과 예비숙련기술인들을 1 대 1로 이어주는 ‘숙련기술 전수 멘토링 과정’, 서울공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산업현장교수로도 활동하는 등 후배들을 길러내는 데 열심이다.
앞으로의 목표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보쉬처럼 세계적 브랜드를 가진 엔지니어링 업체가 되는 것이다. 엔지니어링이 수주산업인 만큼 경기에 흔들리지 않도록 한 나라의 비중이 50%를 넘지 않도록 다양화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고유 아이템을 가져야 하고 그만큼 기술 개발을 통해 최고가 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술 관련 전문서적이 귀하다.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 노하우가 외부로 나간다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송 명장은 향후 디피코가 가진 자동차 엔지니어링 관련 노하우를 담은 기술자료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그래서 기술이 널리 전파되고 기능인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어갈 생각이다.
▼송신근 대한민국 판금명장▼
1998년 ㈜디피코를 창업한 송 명장은 그동안 판금기능사1급(1975년) 이외에 배관기능사보(1975년), 일반기계기사2급(1977년), 건설기계기사2급(1980년), 직업훈련교사(1980, 1987년), 실기교사 교원자격(1975, 1978년) 등 6개 부문 국가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경기공업전문대, 서울산업대에서 금형설계를 전공해 이론과 기술을 극대화하여 산업에 접목시켰다.
㈜디피코는 2005년 100만 달러 수출탑, 2007년 5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