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A급 전범 추도식에 ‘조국 주춧돌’ 메시지

침략단죄한 도쿄재판 결과 부정… 요미우리 “고노담화 대체” 촉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사진)가 태평양전쟁 때 전범을 추도하는 의식에 메시지를 보내 이들을 ‘조국의 주춧돌’로 표현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이는 일본의 전쟁 책임을 단죄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논란을 낳고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올해 4월 29일 와카야마(和歌山) 현 고야(高野) 정의 한 절에서 도쿄재판에서 A, B, C급 전범으로 처형된 일본군의 추도법요(法要)가 열렸다. 정식 명칭은 ‘쇼와순난자법무사추도비(昭和殉難者法務死追悼碑)’에 대한 법요였다.

이 비는 전범의 명예회복과 추도를 위해 1994년 설립됐다. 전범으로 처형되거나 수용소에서 사망한 1180명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법요는 도쿄재판을 연합국에 의한 ‘보복’이라고 규정하고 처형당한 A∼C급 전범 전원을 ‘쇼와순난자’로 봤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명의로 애도의 메시지를 서면으로 보냈다. 메시지는 “오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자신의 혼을 걸고 조국의 주춧돌이 된 쇼와 순직자의 영혼에 삼가 추도의 정성을 바칩니다”란 것이다. 전범을 ‘조국의 주춧돌’로 묘사했다.

총리를 지낸 이들 중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퇴임 뒤 한 번 중의원 의원 직함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반면 아베 총리는 지난해와 올해 현직 총리로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도 메시지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27일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아베 총리가 도쿄재판을 부정한 것 아니냐”고 질문을 쏟아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사인(私人)으로 한 행동으로 정부로서 코멘트를 피하겠다. (일본은) 도쿄재판의 판결을 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기자가 “자민당 총재 명의로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사인의 행동이라 말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자 스가 장관은 “내각총리대신 명의로 보내지 않았다. 직함은 사인이라면 자연히 붙이는 관례적인 것”이라고 답하며 피해갔다. 하지만 기자들은 “자민당 총재 명의가 아무리 사인 명의라고 해도 국가와 국민, 외교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며 거듭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편 일본에서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은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27일 ‘역사에 근거해 새로운 장관 담화를’ 제목의 사설에서 “(고노 담화를 대체하는 새 담화를 발표하라는) 자민당의 요청을 중요히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많은 위안부를 ‘성노예’로 강제 연행했다는 오해가 국제사회에 퍼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스가 장관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이전부터 밝힌 것처럼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수정은 없다”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