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의 괴로움/오카자키 다케시 지음/정수윤 옮김/248쪽·1만3000원/정은문고 3만권 장서가의 ‘책장 다이어트’… “책을 500권 정도로 엄선하라”
‘장서의 괴로움’은 ‘책은 상자 속에 넣어두면 죽는다. 책등은 늘 눈에 보이도록’ ‘책은 집에 부담을 준다. 집을 지을 때는 장서의 무게를 계산해 두자’ 등 14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자서적이 어울리지 않기에 괴로움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림은 홍경택 화백의 ‘서재Ⅱ’. 형형색색의 책이 공간을 잠식해 오니 질식될까 두렵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후 책을 위험한 물건의 용의선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서 책이, 장서가 확신범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가 만난 도쿄 한 대학 교직원인 독신 남성 네시기 데쓰야(48)는 원래 목조건물 2층에 책과 함께 살았다. 1층에 살던 부모님은 “장서 때문에 천장에서 끼익끼익 소리가 난다. 이러다간 책이 날 죽이고 말거야”라고 했다. 일본의 목조건물과 지진을 생각하면 엄살이 아니다. 그는 작정하고 ‘책이 사는 집’을 지었다.
완성된 집 1층에는 부모님, 2, 3층에는 네시기가 산다. 그는 넓은 거실 천장을 뚫고 2, 3층 복층 벽을 맞춤제작 책장으로 뒤덮었다. 목욕탕 입구에는 ‘목욕 시 독서를 위한 책장’까지 마련했다. 1만5000권을 수납했지만 여전히 장서는 ‘벽을 먹는 벌레’처럼 왕성히 활동했고 헌책을 대량 처분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침실에는 책을 두지 않겠다는 결심이 흔들리고 있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해외토픽 수준의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하다. 집에 책이 3만 권쯤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 헤아려보니 13만 권이 나오고, 책이 산더미처럼 쌓인 탓에 집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기울어지고 심지어 바닥이 꺼지기도 한다.
애주가가 숙취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술자리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장서가도 괴로운 척하면서 장서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집착, 자랑에 푹 빠져 있다.
전자책 시대가 열리면 장서의 괴로움이 줄까. 저자의 대답은 확고하게 ‘아니다’이다.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 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책을 덮는데 기분이 묘했다. 장서술을 배우고자 책을 읽었는데 결국 책장에 책이 한 권 더 쌓였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