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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어린 발명가들과 미래창조부

입력 | 2014-08-19 21:38:00

초중고생 발명품 들여다보면 무한한 상상력과 도전정신 놀라워
이들의 과학심 창의력 차별성 한껏 북돋워만 준다면 풀뿌리 창조경제 꽃피우지 않을까
창조경제 이끈다는 미래창조부, 발명 현장에 관심이나 있는지?




배인준 주필

충북 영동초교 5학년 나현명 양은 추운 날, 황사 낀 날, 비 오는 날, 등굣길 건널목에서 교통 봉사를 하는 엄마를 보며 걱정스러웠다. 마스크를 쓰면 덜 춥고 나쁜 모래도 덜 마실 텐데 호루라기 때문에 마스크를 못 쓰시네…. 호루라기를 잠시 입에서 떼고 싶어도 한 손엔 깃발, 한 손엔 우산을 들어 손이 모자라네….

서울 등원중 2학년 최경식 군은 아버지한테 가끔 바둑을 배운다. 한 판 둔 뒤 반상을 정리하려면 섞여 있는 흰 돌, 검은 돌 200여 개를 일일이 손으로 분류해야 한다. 자판기에서 50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을 나누듯이, 흑백 바둑돌을 자동으로 분리하는 방법은 없을까?

현명 양은 생각 끝에 발로 부는 호루라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입 대신 발로 펌프질을 해서 호루라기에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아이디어였다. 페트병 플라스틱용기 널빤지 등과 호루라기를 결합한 1차 시작품을 올 3월에 만들었다. 그리고 석 달간, 2차부터 14차 작품까지 앞 작품의 문제점과 단점을 개선·보완한 발 호루라기를 차례차례 만들었다.

바둑의 흰 돌과 검은 돌 크기가 같으면 색깔의 착시현상 때문에 흰 돌이 더 크게 보여 반상의 시각적 균형이 깨진다. 그래서 검은 돌을 조금 크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경식 군은 바둑돌 공장에 직접 확인도 했다. 경식 군은 아크릴로 구멍과 통로를 만들어 작은 흰 돌은 빠져나가고 큰 검은 돌은 돌아가게 하는 분리수거 장치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제36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시상식이 지난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있었는데 ‘가정폐품을 재활용한, 발로 부는 호루라기’가 대통령상을, ‘바둑돌 자동분류 장치’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두 수작을 비롯해 장려상 이상의 301점이 과학관에 전시됐다. 청소년들의 무한한 상상력이 경이로웠다. 기발한 발상 전환과 통념의 허를 찌르는 도전이 감탄을 자아냈다.

방방곡곡의 초중고교생들이 올해 발명품대회에 출품한 작품은 10만9818점이나 된다. 추리고 추려 국립중앙과학관에 최종 전시한 301점은 그중 0.27%에 불과하다. 과학에, 발명에, 미래의 꿈에 목말라 있는 청소년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들의 과학심 탐구심 관찰력 창의력 독창성 차별성을 한껏 살려주기만 한다면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외치지 않아도,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거대 정부 조직이 없어도 거뜬히 과학발명 강국이 될 듯하다. 저 아이들의 창의가 현실에서 꽃필 수 있도록, 도전 정신이 무참히 꺾이지 않도록, 발명의 토양만 잘 마련해준다면 21세기의 에디슨이 미국에서만 나오란 법도 없다.

그런데 정치는 과학과 발명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지원을 비틀기도 한다. 학생발명품대회를 1979년에 창설하고 주최해온 것이 동아일보사라는 이유로, 노무현 정부는 이 대회를 후원해온 한국야쿠르트 측에 곱지 않은 인식을 내비쳐 후원 중단을 압박한 적이 있다. 대회 안내 현수막 등에 ‘주최 동아일보사’라는 표기를 삭제토록까지 했다.

해마다 적어도 수만 명, 많게는 10만 명 이상의 청소년에게 발명왕의 꿈을 심어주는 행사를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신문사가 주최한다고 해서 대회 존립을 위협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거대 재벌도 아닌 한국야쿠르트가 대회 후원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기업의 사회적 공헌 정신의 살아 있는 본보기일 것이다.

지난주의 학생발명품대회 시상식과 전시개관식에 과학관 측을 제외한 정부 공동주최자인 미래창조과학부 당국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장관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세계수학자대회에 갔고, 담당 차관은 서울에서 열린 정보보호캠페인에 개그맨들과 함께 참가했다. 발명을 관장하는 미래정책국장조차도 학생 발명에 관심이나 있는지 궁금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수학 과학 경진대회 수상자들을 수시로 백악관에 초청해 격려한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이 미국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라는 것을 대통령이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 앞에서 발명품을 소개하고 박수를 받으니 이만큼 더 큰 칭찬과 격려도 없다.

박근혜 정부가 진실로 창조경제를 꽃피우겠다면 학생 발명 같은 ‘창조의 풀뿌리’부터 현장에서 보살피고 응원하는 정부가 되어야 하리라. ‘대통령이 보지 않는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라는 공무원 철칙부터 깨야 하리라.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행사를 가져야만 공무원들이 관심을 가질지 답답한 일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