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이하며… 현진 스님 특별기고

입력 | 2014-08-12 03:00:00

[교황 방한 D-2]함께 아래에 서겠습니다
‘보살심’으로 이웃의 아픔 치유… 종교를 넘어 우리 시대의 스승




그저께 가까이 살고 있는 목사님이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복숭아를 놓고 갔다. 요즘 세상이 먹을 것이 귀한 그런 시대는 아니지만 과일 상자에 담긴 그 노력과 정성이 고마워서 흐뭇한 마음으로 아껴가며 먹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암자에 이렇게 이웃 종교인들이 가끔씩 다녀가는 것은 몇 년째 종교인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적인 인연 덕분이다. 정기적인 이 모임은 사찰에서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때로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면서 격의 없는 친교를 나눈다. 지난번 모임 때는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프린치스코 교황에 대한 관심으로 집중되었는데 교리와 상관없이 전체의 분위기는 환영일색이었다.

내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고결한 영성을 지닌 위대한 스승을 친견(親見)할 수 있다는 것은 동시대인으로서의 행운이기 때문이다. 그분을 아직 만난 적은 없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특별히 사랑하는 일을 실천하는 분으로 알려져 더욱 존경심이 앞선다. 자신보다 남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불교에서는 ‘보살심(菩薩心)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웃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동체대비(同體大悲·중생의 고통을 내 것처럼 여기는 자비심)로 충만한 우리 시대의 노련한 스승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는 어떤 이적을 보이거나 초능력을 발휘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나는 평소의 강론을 통해 이적을 보이는 종교는 참다운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산을 움직이고 바다를 옮기는 그런 이적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는 술사나 사기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기적은 현란하거나 초월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질서나 섭리를 벗어난 것은 ‘진정한 기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재차 말하지만 삶의 기적은 도술을 부리거나 이적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상식과 원칙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고 신앙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선한 마음이 앞서야 한다. 이를테면 끝없는 사랑과 자비심이다. 이런 마음이 없는 종교는 기적의 신비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도 하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비와 사랑은 종교가 보여주는 진정한 기적의 실현이나 다름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처음 군중 앞에 나타날 때 특별히 마련한 연단에 오르기를 권유하자 이를 거부하면서 “나는 여기 아래에 서겠습니다”라고 했다. 소탈하고 겸손한 그의 성품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스승일수록 스스로 형식과 권위를 거부하고 군중 속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아왔다. 이번에 이러한 성품을 지닌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 땅에서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은 종교를 떠나서 우리 모두의 축복이며 영광이다. 왜냐하면 평생 가난을 실천해 온 그분의 행로가 사랑과 평화의 길을 가르쳐주는 이 시대의 기적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방한 기간 동안 소형차를 이용하거나 세월호 참사 유족을 만나는 등 수도자로서 청빈함을 보여주고 상처받은 이웃을 대변하는 일에 흔쾌히 나선다고 하니까 우리 교단의 일은 아니지만 듣기만 해도 반가운 소식이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2012년 성탄절 전야 미사에서 “신을 기억하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씀이 무척 감동으로 다가와서 우리 신자들에게도 자주 인용하고 있다. 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신의 자리가 없다는 의미이므로 너무 물질만 따라가는 세태에 대한 명쾌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삶은 욕심으로 이미 꽉 차 있어서 신을 위한 자리가 남아 있지 않다. 바꾸어 말해 우리에게 가난한 마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교황의 방한이 이웃 종교인의 입장에서는 무척 부럽다. 아직도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한국 방문을 거부당하는 티베트의 활불(活佛) 달라이라마와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되는 까닭이다. 이번 교황 방한을 계기로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인 14대 달라이라마에 대한 관심과 여론이 뜨겁게 형성되어 우리나라 국민과 불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듭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며 모든 이에게 밝은 지혜와 깊은 사랑을 전해주길 염원한다.

―청주 마야사 주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