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채널A 차장
저장(浙江) 성 원링(溫嶺) 시 계씨 집성촌 등에서 자비로 온 17명의 후손은 계금 장군이 참여한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위업을 처음으로 듣고는 “놀랍고 자랑스럽다”며 감격했다.
전장에서 군인은 그 권력에 취하기 쉽다. 임진왜란 때 고통을 기록한 유성룡의 ‘징비록’엔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재상 유성룡 등의 무릎을 꿇린 뒤 ‘어찌 명 군사의 군량미가 떨어지게 할 수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재상이 피눈물을 삼키며 사죄를 했을 정도이니 백성의 고충이야 오죽했으랴. 명 장수 유정(劉綎)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로부터 뇌물도 받았다.
이순신이 1597년 명량에서 왜군을 격퇴시킨 때는 늦가을이라 장졸들은 추위에 떨고 굶주렸다. 그때 수백 척의 피란선에 피신해 있던 백성들이 식량과 옷을 나눠주며 도왔다. 왜군들이 다시 침입하지 못하도록 13척의 배 뒤로 수백 척의 피란선을 세워 두는 위장전술에도 기꺼이 동참했다. 이순신은 13척의 배뿐만 아니라 ‘민심’이라는 무기도 들고 싸웠던 것이다. 백성을 먼저 살피는 애민(愛民)을 그가 실천한 덕분이다.
‘명량’의 관객이 10일 1000만 명을 넘었다. 어려움에 처한 한국 사회가 이순신을 ‘소환’한 듯하다. 그러면서 그의 지략과 리더십을 그리워하고 있다.
마음을 얻는 리더십,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리더십 담론은 자칫 리더의 역할만 중시하는 오해를 부른다. 이순신과 계금의 진짜 미덕은 ‘자기 역할에 충실했던 사람’이라는 점에 있다. 백성을 지키는 자신들의 본분을 잊지 않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한 못난이가 여럿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선임병의 구타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본분을 망각한 가해자가 없어야 한다.
허진석 채널A 차장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