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1960∼ )
아내가 줄넘기를 한다.
스치는 발바닥으로 줄을 넘기며
사라진 줄이 만드는 둥근 공간 속에서 활짝 웃는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박자를 겨누다가
잠시 열린 줄의 틈으로
딸아이가 뛰어든다.
엄마의 방 속에서 엄마와 함께 뛰는
딸아이의 머리채가 구름 높이 출렁인다.
환한 하늘이 이마로 내려온다.
엄마와 마주했다, 뒤로 돌아섰다,
방향을 바꾸며 솟을 때마다
줄 안의 공간도 덩달아 환해진다.
아내와 딸이 하는 한 박자 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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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재빨리 뛰쳐나오고
통통 튀는 방 속에 아내 혼자 남아있다.
아들아이도 박자로 줄의 틈을 열고 들어간다.
등이 굽은 할머니도 들어갔다 나온다.
줄과 줄 사이의 엇박자가
온 가족을 토하고 뱉는 줄넘기.
나도 그 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아내의 숨결이 얼굴에 닿는다.
오랜만에 맞춰보는 경쾌한 박자에
몸속 깊이 잠든 율동이 파도처럼 인다.
아내의 줄이 만든 작은 방 속에서
온 세상이 함께 뛴다.
아내의 방에서 빠져나간 아이들이
아내한테 배운 박자로 저만의 줄넘기를 한다.
하하호호 웃으며 작은 방의 빛 송이를 끌고
제 갈 길로 멀어져간다.
이 시를 읽으니 골목이 떠나가라 목청 높이고 뛰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꼬마야, 꼬마야, 줄을 넘어라!/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꼬마야, 꼬마야, 만세를 불러라!/꼬마야, 꼬마야, 잘∼ 가거라!’ ‘꼬마야 꼬마야’는 술래 두 사람이 양끝을 잡고 돌리는 줄을 넘는 놀이다. 줄넘기 줄은 기특하다. 아니, 인간은 기특하다. 돌돌 말면 한 줌밖에 안 되는 줄 하나로 얼마나 많은 놀이와 운동을 할 줄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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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