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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난 사람]인터넷 달군 동영상… 포항 ‘소맥 이모’

입력 | 2014-08-02 03:00:00

황금주-일출주 ‘제조’에 탄성이 절로… 그렇다면 주량은?




7월 22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 다미촌에서 ‘소맥 이모’ 함순복 씨가 폭탄주 제조 시연을 하고 있다. 파스가 붙어 있는 저 ‘손’이 하루 수백 잔의 폭탄주를 만들어 낸다. 포항=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폭탄주는 맛으로도 먹지만 눈으로도 먹는다. 그래서 영업이나 접대로 술자리가 많은 직장인이나 술집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독특한 제조법을 연구하곤 한다.

‘소맥 이모’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40대 여성은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이 여성은 능숙하게 폭탄주를 제조한다. 영상들 가운데 압권은 유튜브 조회수 52만 건을 기록한 ‘폭탄주 이모의 젓가락 회오리 쇼’. 동영상에서 소맥 이모는 손님 손에 쥐여 준 젓가락 끝에 소주잔을 올리고 잔을 힘차게 돌린 뒤 소주를 따른다. 회전 때문에 소주잔 안에서는 회오리가 몰아친다. 젓가락 끝에 올려놓기도 힘든 소주잔에 술을 부어 돌리기까지 하다니…. 이모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흔들리니까 단디(단단히) 잡아라.” 더 놀라운 영상도 있다. 이모가 소주병 뚜껑을 따더니 멀리 있는 잔에 손목을 튕겨 술을 던진다. 병에서 튀어 나온 소주는 허공을 가르고 잔으로 쏘옥 들어간다.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마다 해당 영상들을 두고 ‘진짜냐 컴퓨터그래픽(CG)이냐’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각에선 “드디어 ‘주(酒)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등장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폭탄주 좀 마셔 봤다’는 ‘기자’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영상.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소맥 이모’ 함순복 씨(48)를 직접 만나 봤다.



‘소맥 이모’는 의외로 술을 못 마셨다

7월 22일 점심 무렵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 다미촌. 작은 마당이 딸린 2층짜리 고깃집 다미촌 입구에는 ‘처음처럼 명예 홍보대사 1호의 집’이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인근 주민은 이모를 가리켜 “포항에선 원래부터 이효리보다 유명했다”고 말했다. 식당 입구 쪽에는 함 씨가 개그맨들과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내부를 구경하는 사이에 함 씨가 들어왔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는데 그는 “뭐 이렇게 새벽같이 왔어?”라며 놀랐다.

기자는 우선 주량을 물었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뜻밖의 답을 내놨다. “저 술 못 마셔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함 씨는 “처음엔 이 쓰고 맛없는 걸 왜 먹을까 싶었다”며 “손님이 한 잔 먹으라고 하면 마시고 나가서 토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한 잔 정도는 마신다”고 이야기했다. 폭탄주를 ‘맛있게’, ‘멋있게’ 만드는 장인의 대답 치고는 의외였다. 더불어 다소곳한 말투도 영상에서 보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었다.



“이모 진짜지? 아니면 나 눈물 날 것 같아∼”


이때 식당에 40대 남성 손님 7명이 들어왔다. 고기가 구워지는 사이 ‘소맥 이모’가 나섰다. 왼손으로 소주병을 들더니 오른손에 들고 있는 맥주병 옆쪽을 비켜 쳤다. ‘뻥.’ 손님들 사이에서 탄성이 나왔다. 본격적으로 폭탄주가 제조되기 직전 손님들 사이에서 작은 다툼이 생겼다. “(영상 중에) 몇 개는 가짜일 거라고.” “아냐 다 진짜야.” “(함 씨를 보며) 이모 진짜지? 아니면 나 눈물 날 것 같아∼.”

알고 보니 이들은 영상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에서 포항까지 내려온 손님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동영상의 진위가 밝혀지는 순간. 손님들은 함 씨의 입만 쳐다봤다. 그는 급하게 손님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 젓가락 위에 잔 돌리는 거랑, 술잔에 술 던지는 거 말하는 거지? 그거 CG야. 진짜면 내가 중국 기예단이게.”

해당 동영상은 한 주류업체에서 영상이 실제인지 CG인지를 맞히는 이벤트를 위해 함 씨를 모델로 계약해 만든 것이었다. 이들은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허탈해했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낀 한 손님은 ‘이모 미워’를 연신 내뱉었다.



‘명불허전’

손님들이 실망한 모습을 보이자 함 씨는 즉각 폭탄주를 만들 준비를 했다. 역시 ‘소맥 이모’라는 별칭이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첫 번째 선보인 기술은 ‘황금주’로 전통 소폭주(소주+맥주)다. 함 씨는 잔 4개를 모았다. 소주병으로 맥주병 뚜껑을 딴 뒤 소주가 잘 섞여야 한다며 소주병 주둥이 쪽을 손목과 손끝으로 신나게 쳤다. 이후 소주병이 물 흐르듯 유리 맥주잔 위를 한 차례 왕복했다. 잔에는 정확하게 똑같은 양의 소주가 담겼다. 그는 맥주병을 몇 차례 흔들더니 병 입구를 잔 쪽으로 향했다. 소방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맥주가 뿜어져 나왔다. 함 씨는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켜고 잔을 받쳤다. 황금색 잔 안에선 오로라가 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얀 맥주거품이 잔 속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손님들은 ‘와∼’ 하고 탄성을 쏟아냈다. 마치 잃어버린 장난감을 다시 찾은 듯 보였다.

이어 함 씨는 맥주잔들을 일렬로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았다. 뒤집은 맥주잔 위에 양주잔을 놓더니 자줏빛 복분자 술을 따랐다. 그리고선 다른 맥주잔으로 술이 채워진 양주잔 위를 덮었다. 그는 이중으로 겹쳐진 맥주잔을 하나씩 뒤집었다. 복분자가 들어 있는 곳에 맥주를 채우고 빨간색 칵테일을 보탰다. 그는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켜고 잔을 받쳤다. 빨간색도, 주황색도 아닌 해가 뜰 때 하늘의 묘한 색이 형성됐다. 그래서 ‘일출주’란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맛이었다. 맹맹하지 않으면서도 목 넘김이 좋았다. 카푸치노처럼 부드러우면서 크림맥주처럼 맥주 맛이 살아 있었다. 함 씨는 “음료수 먹듯 맛있다고 먹다가 네 발로 기어가는 사람 많이 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폭탄주를 마신 한 손님은 “CG면 어떠냐. 소맥 이모는 소맥 이모다”라고 말했다.



고깃집 딸의 하소연… “아, 고기 두 점만 먹어 보고 싶다”

다미촌은 2002년에 문을 열었다. 주부였던 함 씨가 막창을 좋아해 막창구이 집을 내려다 고깃집을 차리게 됐다. 현재 있는 2층 건물을 세를 내고 빌렸다. 한두 해는 어느 정도 장사가 됐다. 하지만 광우병 사태가 난 뒤 가게에 파리만 날렸다. 함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하루에 손님이 한 테이블도 없던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대출을 받아 가게 세를 냈을 정도였다. 그는 “딸이 카카오톡에 ‘고기 두 점만 먹고 싶다’라고 써 놨더라. 그랬더니 친구들이 ‘야, 너네집 고깃집이야!’라고 말했단다. 그 정도로 어려웠다”고 말했다.

4년 전 함 씨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손님이 알려준 폭탄주 제조 기술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 장사가 안 돼 손님이 떠나면 할 일이 없었던 그는 어느새 손님보다 더 능숙해질 정도로 폭탄주 제조의 달인이 됐다. 함 씨는 “손님이 없으니까 직원들이 나만 보는 거야. 폭탄주 한 잔 만들어 주고 그랬지 뭐”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젠 내가 손님들보단 폭탄주를 잘 만들지 않냐”고 조용히 말했다.



해외에서도 발길 이어져

전통 소폭주(소주+맥주)인 ‘황금주’가 만들어지는 과정. ‘소맥 이모’는 유리잔들에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소주를 나눠 담았고 맥주병에서 뿜어져 나온 맥주가 잔에 안착했다. 플래시를 켠 스마트폰 위의 폭탄주는 그야말로 황금빛을 띠었다.

올해 3월에는 한 방송사의 개그맨들이 ‘다미촌’을 찾았다. 소맥 이모를 보러 온 게 아니라 그야말로 고기를 먹으러 온 것이었다. 연예인이 신기했던 함 씨는 개그맨들과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매니저들이 말려 찍지 못했다. 그런데 한 개그맨이 그를 알아봤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함 씨는 폭탄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개그맨들은 앞다퉈 그와 사진을 찍으려 했다.

유튜브에 국경이 없듯 ‘소맥 이모’의 인기에도 국적은 없었다. 영상을 본 외국인들이 그의 ‘쇼’를 보러 왔다. 영상을 보고 출장차 한국에 온 한 스위스 남성은 한국 업체 사람에게 다미촌 예약을 부탁했다. 그는 회의 내내 ‘예약 확실히 됐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함 씨는 “한 일본 사람은 출장 내내 ‘밥은 내가 살 테니 그 식당에만 데려가 달라’고 이야기했다더라”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일요일 하루 쉬는데 보통 일요일에는 행사를 다닌다”며 “평일에 행사를 가려면 예약하는 손님들한테 ‘저 없어도 되냐’ ‘가도 되냐’라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중국, 일본에서도 1, 2시간 공연 제안을 받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정중히 거절했다. 이 식당은 현재 2명이라도 예약을 해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섭씨 30도가 넘어가는 무더위에도 야외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정도다. 인터뷰 내내 함 씨의 휴대전화 두 대는 수시로 울렸다.



‘룸살롱 이모’가 아닌 ‘피로해소제’가 되고 싶다

술로 뜨고 나니 힘든 점도 있었다. 악플 때문이다. 함 씨의 영상에는 ‘룸살롱에서 일하던 여자다’, ‘옷 벗고 테이블 올라가 춤출 것 같다’는 식의 악플이 달렸다. 함 씨는 “연예인들이 악플 때문에 왜 힘들어하는지 알 것 같다. 처음에는 내 영상을 올렸던 사람까지 원망하고 그랬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함 씨를 본 손님들은 금세 오해를 풀었다. 그는 생일인 손님에게 자비로 케이크를 사다 줄 정도로 정에 약한 사람이었다. 손님마다 쇼를 보여 달라는 탓에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오른쪽 손에는 파스가 붙어 있었다. 함 씨는 “예전엔 사람이 안 와서 문제였는데 지금은 안 가서 문제다”라고 웃으며 “경제 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삶이 팍팍하지 않으냐. ‘피로해소제’ 같은 작은 재미라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직원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1급 지체장애인들이 있는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끊이지 않는 에피소드

그는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를 ‘구이구이(9292)’로 할 정도로 음식에도 애착이 많다. 함 씨는 “음식이 정말 맛있는 집인데 쇼만 보러 와서 서운할 때가 있다. 쇼가 끝나면 항상 맛있게 드시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식당을 찾은 직장인 이석익 씨(41)는 “가게 위치가 좋은 편이 아니라 몇 년 전에 왔을 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음식이 맛있는 집이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다미촌은 고깃집이 맞지만 취재가 끝난 뒤에도 기자의 뇌리에선 ‘폭탄주’ 이야기가 떠나질 않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한 50대 남성이 함 씨의 동영상을 본 뒤 집에서 화장실을 갈 때마다 콜라병을 들고 들어갔다는 얘기다. 그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콜라병에 물을 채운 뒤 손목을 튕겨 멀리 있는 잔에 물을 채우는 연습을 했다. 함 씨는 “나이 먹은 아저씨가 쪼그려 앉아서 연습하는 모습을 상상해 봐라. 얼마나 웃기냐”라고 말했다. 기자는 해당 손님이 그 동영상이 CG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할까 걱정이다.

포항=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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