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맬컴 글래드웰은 근작 ‘다윗과 골리앗’에서 다윗이 돌팔매 하나로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게임의 룰’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경 속 골리앗은 다윗에게 ‘내게로 오라’고 말한다. 다윗은 골리앗이 제시한 근접전이라는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지 않고 멀리서 돌팔매질로 승부를 보는 전략을 택했다. 명량대첩이 이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세월호 참사가 겹쳐져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명량’ 촬영을 작년 7월 끝내고도 지금껏 개봉하지 못한 이유가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해상 및 수중 장면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명량의 다른 이름이 울돌목이다. 물살이 시속 24km나 되는 울돌목은 아시아에서 물살이 가장 세다. 울돌목에 이어 두 번째로 물살이 빠른 곳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맹골수도다. 양측의 거리는 30km밖에 되지 않는다. 울돌목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과 선조들에게 후손들은 얼굴을 들 수 없다.
인성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결국 교육에 의해 길러진다. ‘남을 밟고 일어서라’는 사회 분위기, 존중과 배려가 실종된 교육 시스템에서는 무책임과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세월호 선장 이준석 같은 인간만 양산해낼 가능성이 크다. 혹자는 인성이 피폐해진 이유가 경쟁교육 때문이며 경쟁교육만 없애면 인성은 회복될 것이라고 하는데 어느 시대에도 경쟁은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순신은 31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고 원균과의 경쟁에서도 패퇴해 곤욕을 치른다. 어찌 보면 그는 경쟁의 낙오자였다. 마비된 인성의 원인을 입시경쟁에서만 찾아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국가 대혁신의 방향과 내용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지만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가정 학교 미디어가 인성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세칭 ‘이준석 방지법’이라고 하는 인성교육진흥법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다. 왜 지금 이순신인가. 명량에서 이순신에게 당한 일본 수군은 장군의 고향인 충청도 아산에 찾아가 쑥대밭을 만들고 이 와중에 장군의 막내아들이 죽는다. 그런데도 선조는 명량대첩에서 믿기지 않는 승전고를 울린 이순신에게 “소소한 적을 잡은 데 불과하다”며 포상하지 않았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은 예나 지금이나 어쩜 그대로인지 신기할 정도다. 이런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이순신에게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순신을 세월호 이후 국가 대혁신의 모델로 삼을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