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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15년만에 다시 주목받는 美 ‘지퍼게이트’… 그리고 두 여인

입력 | 2014-07-26 03:00:00

돌아온 르윈스키… 힐러리 대선행보 ‘부적절한 변수’?




“클린턴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깊이 후회하고 있다. 이제 그와 만날 때 썼던 베레모를 불태우고 그때 입었던 푸른색 드레스를 묻을 때가 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의 성 추문, 이른바 ‘지퍼게이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니카 르윈스키가 15년 만에 돌아왔다. 1999년 3월 자서전 ‘모니카 이야기’ 출간과 동시에 이뤄진 유명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와의 독점 인터뷰 때 100만 달러(약 10억 원)를 받았던 그는 그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둔 생활을 했다. 의도하지 않았던 유명세로 취직 연애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지퍼게이트 당시 법정에 불려 다니며 쓴 변호사 비용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다이어트 비디오를 찍고 가방 사업을 벌였지만 모두 실패했다. 마흔한 살이 되도록 일자리도 잡지 못해 이력서에 쓸 말이 ‘백악관 인턴’뿐이었다.

르윈스키의 처지를 바꿔놓은 사람은 공교롭게도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이다. 유력 대선 후보가 된 힐러리의 정치적 위상이 치솟자 역설적으로 르윈스키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르윈스키는 2014년 5월 미 연예잡지 배니티페어에 등장했고 이달 초에는 미 NBC와 인터뷰, 내셔널지오그래픽의 3부작 미니시리즈 출연 등 외부활동을 부쩍 늘리고 있다. 특히 클린턴과의 악연을 끊을 뜻을 강조한 배니티페어 인터뷰는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제 미국 언론은 르윈스키의 행보에 특별히 주목한다. 인터뷰, 회고록 출간 요청도 빗발친다. 16년 전에는 미국을 뒤흔들었지만 이제는 케케묵은 스캔들을 뒤로하고 르윈스키의 새로운 행보가 힐러리의 대선 행보와 묘하게 맞물리고 있다.

연적(戀敵)이라 하기는 애매하고 친구는 더더욱 아닌 두 여자가 일종의 운명공동체로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을 향한 조명의 밝기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보통 가정의 똑똑한 딸 vs 부잣집 철없는 딸

힐러리와 르윈스키에 대한 세간의 주목도가 동시에 올라가자 두 사람의 인생 궤적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그런데 두 사람은 도무지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력과 경력을 지녔다.

힐러리는 1947년 미국 중부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직물회사에 다니던 아버지 휴 로댐은 깐깐하고 권위주의적인 인물로 전해진다. 치약 등 생필품을 아껴 쓰라고 자식들을 닦달했고 시험을 잘 봐도 칭찬은커녕 더 잘하지 못했다며 딸을 나무랐다.

어렸을 때부터 똑똑했던 힐러리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명문 사립여대 웰즐리에 진학했다. 당시 학생회장이던 힐러리는 다른 여학생들을 향해 “언젠가 우리 여자들이 지도력과 힘을 발휘할 시대가 올 것”이라고 연설하기도 했다.

예일대 법학대학원에서 남편을 만난 그는 빌 클린턴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또 클린턴 재임 당시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 부인으로 평가받으며 ‘빌러리(빌+힐러리)’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이제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도 넘보고 있다.

르윈스키는 1973년 미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유명 종양 전문의였던 아버지 버나드 르윈스키는 나치 독일의 압제를 피해 미국으로 피신한 유대인 후손이다. 르윈스키 가족들은 베벌리힐스, 벨에어 등 로스앤젤레스 지역 부촌을 옮겨 다니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르윈스키는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포틀랜드 소재 루이스&클라크 칼리지에 입학했지만 연애로 바빴다. 상대는 자신이 고등학생일 때 연기수업 지도를 했던 유부남이었다. 빈둥대는 딸을 보다 못한 그의 부모는 1995년 7월 딸을 리언 패네타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의 인턴으로 밀어 넣었다.



희대의 스캔들, 아직도 폭발력 있어

르윈스키는 지퍼게이트를 또 이용할 수 있을까. 그의 재등장에는 ‘돈과 명성을 다시 얻기 위해 일부러 나왔다’는 말이 꼬리를 문다. 지퍼게이트는 지금 시점에서 복기해 봐도 폭발력이 다 소진되지 않은 사건이다.

르윈스키는 1995년 백악관 입성 4개월 만에 대통령의 연인이 됐다. 당시 클린턴은 49세, 그는 불과 22세였다.

비서실 간부들은 특별한 용무 없이 대통령 집무실 주변을 얼쩡거리는 르윈스키가 못마땅했다. 1996년 4월 그를 국방부로 보냈지만 둘의 밀회는 계속됐다.

르윈스키가 국방부로 자리를 옮길 때 린다 트립이라는 여직원도 같이 이동했다. 르윈스키는 트립에게 대통령과의 밀회를 시시콜콜 털어놨다. 트립은 클린턴 정권이 오랫동안 백악관에서 일하던 자신을 이유 없이 내쳤다며 앙심을 품고 있던 터였다.

르윈스키 본인과 트립이 흘리기 시작한 염문은 당시 클린턴을 상대로 성희롱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던 전 아칸소 주정부 직원 폴라 존스의 변호인단에 포착됐다. 존스 변호인단은 클린턴의 여성편력 사례를 입증하기 위해 르윈스키를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언론의 전방위 압박과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집요한 수사가 죄어들자 클린턴은 1998년 8월 ‘부적절한 관계’를 시인했다.

같은 해 9월 초 스타 검사는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1995년 11월부터 1997년 3월까지 10회의 성관계를 가졌으며 르윈스키가 제출한 푸른 드레스에 묻은 정액이 클린턴의 것이라고 공개했다. 유사성행위 등 낯 뜨거운 내용들로 구성된 이 보고서는 공개 당시 미국인 2000만 명이 읽었다.



르윈스키 복귀, 힐러리에게 호재일까

클린턴이 퇴임하자 르윈스키도 서서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2008년 힐러리와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일 때 르윈스키를 언급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힐러리가 패하면서 흐지부지됐다.

완전히 잊혀지는 듯했던 르윈스키는 올해 힐러리의 부상과 함께 다시 등장했다. 당초 많은 사람들은 르윈스키라는 이름이 힐러리에게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6월 초 두 번째 자서전 ‘힘든 선택들’을 출간하고 사실상 대선 행보를 공식화한 그에게 남편의 어두운 그림자가 또다시 악재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게 됐다. 하지만 상황은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등장한 르윈스키가 짜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클린턴 진영에 유리한 발언만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르윈스키는 “클린턴과의 성관계는 전적으로 상호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 사건을 힐러리 옭아매기용으로 사용하려 했던 공화당의 셈법을 완전히 헝클어뜨렸다.

당초 공화당은 이를 성(性)이 아니라 권력남용 문제로 봤다. 즉,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어린 여자 인턴을 성적으로 착취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은폐하려 했으며 힐러리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르윈스키 본인이 이를 강력 부인함에 따라 공화당의 공격 무기가 무뎌져버렸다.

르윈스키는 힐러리가 스캔들이 터졌을 때 자신을 ‘자아도취에 빠진 미치광이’라 비난한 것도 “그 말이 힐러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말이라면 나는 오히려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미안하다는 뜻을 표했다.

이어 스타 특별검사가 자신을 조사할 때 도청을 지시했지만 그 제의를 거부했다며 의도적으로 클린턴 집안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 언론들도 이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루스 마커스 워싱턴포스트(WP) 정치 전문 칼럼니스트는 “르윈스키가 의도했건 안 했건 그가 힐러리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고 평가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쿠스도 “르윈스키 스캔들을 이용하려는 공화당의 전략은 1990년대에도 먹히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성 유권자의 표를 잃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여자의 묘한 공생 관계

공화당 내부에서는 여전히 르윈스키 사건으로 힐러리를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공화당 선거전략가 키스 어펠은 “르윈스키는 1998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클린턴이라는 이름의 오점”이라며 공세를 펴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상은 르윈스키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캔들을 낱낱이 알고 있다. 그런데 힐러리나 르윈스키가 상대방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자신만이 피해자인 양 행세하면 서로 손해 보는 게임에 빠진다는 것이 미국 정가의 중론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캔들에 넌더리가 난 미국인에게 더 큰 짜증과 환멸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르윈스키에 관한 질문을 받은 힐러리가 “앞으로 르윈스키의 인생이 잘 풀리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넨 이유도, 르윈스키가 클린턴 측에 유리한 말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상대방에 관한 부적절한 언급과 신경전으로 논란을 만들어봐야 자신을 공격하는 측에 먹잇감만 던져줄 뿐이고 자신의 이익에도 악영향을 줄 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두 사람이 앞으로도 묘한 공생관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악연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싫든 좋든 한 묶음이 돼버린 두 여자. 과연 힐러리는 백악관 주인이 되고, 르윈스키는 남들처럼 직장과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결말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2016년 대선이 끝날 때까지 두 여자가 ‘꺼진 불’로 알았던 지퍼게이트 때문에 마음을 졸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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